“이제 겨우 굴을 10분의 1 캤는디, 인제 올해 농사는 끝났시유.”

10일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해변.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는 오후 5시 무렵,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던 김운환(58)씨의 방제복은 검은 기름으로 온통 뒤범벅이었다. 25년간 여기서 굴 양식을 해 온 그는 “내 평생 이런 끔찍한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10일, 기름띠가 충남 지방 최대의 양식 밀집지대인 가로림만까지 파고 들면서 이곳 주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가로림만은 태안과 서산을 마주 하고 있는 항만으로 1987가구, 5000여명의 어민들이 바지락· 굴·김 등을 양식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는 지역이다. 태안군 어가 인구의 34%, 서산시 어가 인구의 91%가 이 곳에 살고 있다.

◆충남 최대 양식지까지 기름 오염

이날 오전 10시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포구. 바닷물이 밀려가자, 시커먼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안에서 1㎞ 이상 물이 빠지며 드러난 굴 양식망 사이사이로 검은 기름이 묻은 껍데기가 보였다. 이원면 당산리에서 굴양식을 하는 최진엽(50)씨는 “굴이 죽어가고 있다”며 “사고가 나자마자 오일펜스를 쳤어야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씨는 사고 직후 이 지역에도 이미 옅은 기름띠가 보였다고 했다.

방재대책본부는 사고 초기 북서풍의 영향으로, 유조선에서 흘러 나온 기름이 대부분 남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9일 북서풍이 약해지면서 오후 3시30분쯤 사고 해역에서 20㎞쯤 떨어진 가로림만 입구까지 기름이 파고 들어 만대포구의 해안 7㎞가 검은 기름띠로 뒤덮였다. 이평주 서산태안환경연합 사무국장은 “가로림만은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지형이기 때문에 한 번 기름띠가 흘러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만 안쪽까지 확산될 수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가로림만 입구에 오일 펜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지리·독곶리 등 방제작업 나서

가로림만에선 이미 기름띠가 눈에 띄게 몰려와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선 곳도 있다. 오후 6시 충남 서산시 오지리 해변. 바다로 길게 뻗은 부두엔 다음날 사용할 흡착포를 담은 종이상자 100여 개와 이미 사용한 흡착포 등 폐기물이 쌓여있었다. 하루 종일 오일 펜스를 치고 바다에 떠 있는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끝내고 막 돌아오는 주민들의 손 끝엔 기름때가 끼어 있었다.

15년째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신강수(42)씨는 “2월부터 쭈꾸미를 잡아야 하는데 이래가지고선 다 글러먹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