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체들은 작년 하반기 자사(自社) 가입자 간 통화 요금을 50% 또는 전면 무료화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요금을 크게 내린 데다, 새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공약에 맞춰 1월 1일부터는 문자 메시지 요금도 건당 30원에서 20원으로 내렸다. 본지 1월2일자 보도
새해에 수십 건의 문자 메시지 '폭탄'으로 휴대전화가 하루 종일 부르르 떨리지는 않으셨는지. 그렇다면 안심해도 좋다.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휴대전화 사용자다. 이날 오간 문자 메시지는 8억9500여만 통. 평소 하루 이용량 4억9000만통의 2배가 넘었다. 국민 한 명당 18건 이상 문자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98년 시작된 문자 메시지(SMS) 서비스는 올해 10년을 맞이했다.
◆맞붙은 시민단체와 통신업계
지난 1일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업체들은 문자 메시지 요금을 건당 30원에서 20원으로 일제히 내렸다. 2000년 이후 8년 만의 인하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환영할 일이지만, 사실 이동통신업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울며 겨자 먹는' 결단이다.
정보통신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통업체들의 SMS 매출은 2004년부터 3년간 1조3590억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화수분'이다. 하지만 이번 인하로 각 업체들은 수백억원 이상의 매출이 공중으로 날아가게 됐다. SK텔레콤은 자체적으로 1594억원의 매출 감소를 전망했다.
그래도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아직 불만이다. 문자 메시지 요금이 건당 10원까지 더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YMCA 시민중계실 김희경 간사는 "이통사 스스로가 적정이윤을 감안해도 원가가 7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더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구조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이 같은 사실상의 통제 체제를 용납하고 있지 않다는 것. '통신요금 20% 인하'를 내건 새 정부 인수위원회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요금 인가제를 당장 조기 폐지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통신업체는 주로 불법 단말기 보조금 등을 통해 휴대전화를 싸게 파는 형태로 마케팅을 벌여왔지만, 경쟁이 격화되면 결국 요금 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며 "이들이 제대로 붙을 수 있도록 통신 시장 진입장벽 완화, 소매요금 규제 철폐 등으로 '판'을 만들어야 SMS 요금도 자연스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자 메시지의 실체는?
그렇다면 문자 메시지 요금의 원가는 어떻게 정해질까. 먼저 우리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원리를 살펴보자.
이동통신망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바로 휴대전화와 기지국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서울 강남역에서 신촌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고 치자. 그러면 당신의 통화 발신 신호를 강남역에 있는 기지국이 먼저 받고, 신촌의 기지국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신촌의 기지국이 당신의 친구에게 통화 내용을 전달한다.
간단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당연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당신의 친구가 신촌에 있다는 사실이 기지국들에 알려져야 한다는 것. 그래야 강남역의 기지국이 헤매지 않고 당신의 통화 신호를 신촌으로 보낼 수 있다.
때문에 곳곳의 기지국은 권역 내에 있는 휴대전화들과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위치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위치 신호는 데이터 길이가 80바이트(한글 40자) 정도인 전파 채널을 통해 송수신 된다. 이통업체들은 이 사실에 착안해 간단한 부가 서비스를 하나 개발했다. 40자 정도의 문자·기호를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위치 신호와 함께 기지국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게 한 것. 이것이 SMS의 원리다.
◆그렇다면 원가는 얼마?
SMS의 원리를 감안할 때, 시민단체들은 SMS의 원가가 무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음성 통화를 위해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면, SMS는 당연히 따라오는 서비스다. 위치 신호를 주고받는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추가 투자 장비라야 운영 컴퓨터(SMSC)와 휴대전화에 넣을 문자 송·수신 소프트웨어 정도다. 반면 SMS는 천문학적인 단위로 늘어나고 있다. 하루에 수억 통이 보통이다. 서비스 10년째인 지금쯤에는 추가 투자 비용도 거의 들지 않으므로, 건당 원가는 2~3원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반면 통신업체는 생각이 다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매년 1조 5000억원 이상의 투자 비용을 들여 시설을 구축하고, 이 시설로 SMS 등 100여 개의 부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며 "교환기, 기지국 비용은 물론 인건비, 마케팅비까지 모두 합쳐져 있어 SMS만 분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적당한 요금은?
양측의 논란은 여전히 팽팽하다. 그렇다면 가격은 누가 결정해야 할까. 원래는 소비자가 시장을 통해 결정하는 게 맞다. 그러나 국내 통신 시장은 아직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이통업계의 요금 인하가 대부분 정치권의 요구로 이뤄져 왔음을 지적했다. 사실상 시장 기능이 정체된 상태라는 것. 사실 그동안 국내 이통 시장 요금은 사실상 정통부의 관리체제로 운영돼왔다.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요금 인가제'에 따라 허가 받은 요금만 출시해왔다.
이는 원래 SK텔레콤이 통신 품질이 좋은 주파수(800MHz)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통신 시장이 독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는 어쩔 수 없이 시장 경쟁을 저해해왔다.
SK텔레콤에 비해 이익이 적게 나는 KTF, LG텔레콤은 요금 경쟁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들은 주로 정통부가 허가한 SK텔레콤의 요금제와 비슷한 요금제로 대응을 최소화해, 모험을 피하는 길을 택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