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1993년 1월 20일) 새벽 4시까지 연설 연습을 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그는 불과 이틀 만에 국민에게 사과했다. 자신이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여성, 조 베어드가 불법이민자를 보모(保姆)로 들인 사실이 밝혀져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베어드가 우리를 속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불법이민자를 보모로 뒀다가 장관 '내정자' 꼬리표를 떼지 못한 사람은 베어드만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노동장관으로 지명한 린다 차베스, 국토안보장관으로 지명한 버나드 케릭도 같은 이유로 물러났다. 세계 각국 불법이민자가 1200만 명을 넘는 미국에서 그런 보모를 두는 가정은 널려 있다.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하는데 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사람은 고위공직엔 오를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불법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01년 1월, 부시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내정한 도널드 럼즈펠드가 재산을 신고했다. 주식과 은행계좌가 500개가 넘었다. 금융자산을 기록한 내역만 94쪽이었다. 재산 추정치는 적게 잡아 6100만 달러. 럼즈펠드는 1977년 포드 행정부의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후 제약회사 사장 등으로 일하며 재산을 모았다. 야당인 민주당에서 '도덕 십자군'으로 불릴 만큼 독실한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이 럼즈펠드 인준 청문을 하면서 질의 성명을 발표했다. "당신은 국가에 봉사한 훌륭한 기록과 국방장관직을 맡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 … 육·해·공군의 우선순위에 대해 당신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새로운 국방전략을 짜는 데 당신은 어떤 지침을 관리들에게 줄 것인가…." 단어 1000개쯤 되는 성명의 90% 이상이 럼즈펠드의 아이디어와 정책능력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의 재산을 언급한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명한 장관 15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번 주 한꺼번에 열린다. 내정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가벗겨질 각오를 해야 한다. 부모가 친일(親日)은 하지 않았는지, 재산이 많은지, 자식이 군대를 갔는지, 자식이 혹시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지…. 최고위 공직을 맡을 사람이니 그런 '수난'쯤 감수해야겠지만, 그런 개인적 윤리의 잣대, '사덕(私德)'의 잣대만으로는 올바른 일꾼을 가려내기 어렵다. 재산 형성, 자식의 군대와 국적 문제 등에서 불법과 탈법은 없었는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는지 등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인사청문회에서 제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장관 내정자가 나라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조직을 꾸려나갈 리더로서의 능력이 있는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등 '공덕(公德)'의 문제다. '공덕' 대신 '사덕'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선거판에서도 정책이나 능력으로 겨루기보다 너도나도 상대방 가족의 도덕적 약점을 캐내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경쟁에만 몰두한다. 신채호 선생이 다시 태어난다면 "공덕이 중(重)하고 사덕이 경(輕)한데 이것이 전도됐다"고 또 일갈(一喝)하실 것 같다.

지난주 중학생 딸아이 졸업식에 갔더니 교실 뒷벽에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적어 놓았다. '대통령', '장관', '공무원' 등 공직을 꿈꾸고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장관이 되려면 약점을 어떻게든 가리는 게 지름길"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슬픈 일이다. "공직자가 되려면 잘못이 있더라도 거짓말하지 않고 훌륭하고 큰 생각 많이 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청문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