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문학 전문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는 작년 11월 네 권짜리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을 냈다. 당시 경기도 양평 집에서 책을 받아 든 김성동(61)씨는 자신의 단편 '오막살이 집 한 채'의 작품 해제(解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익성(47) 충북대 교수가 쓴 이 글은 "김성동은 '만다라' 발표 이후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 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동씨는 "한 번도 추리물을 써본 적이 없는 나를 유명 추리작가와 혼동한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그가 떠올린 소설가는 부산에 사는 김성종(67)씨로,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와 추리소설 '제5열' 등을 쓴 인기 작가다.
이뿐 아니다. 김성동씨는 "선집에 수록된 '오막살이 집 한 채'는 6·25 이후 전쟁의 상처를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도 엉뚱하게 광주민주항쟁의 후일담 소설로 소개돼 있다"고 말했다.
문단에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문학평론가인 국문과 교수가 쓴 해제라고는 믿기 힘들고, 김성동씨 지적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전문 출판사가 편집과 교열 과정에서 이런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1월 출판사측에 편지를 보내 "작품을 선집에서 빼거나 해제를 바꾸라"고 요구했다.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대표는 25일 "명백한 오류다. 작가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글을 쓴 이익성 교수도 26일 김씨를 방문해 사과하기로 했다. 출판사측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공개사과를 했다. 또 4월 말까지 새 해제를 실은 책을 제작해 5월부터 교체하는 한편, 아직 남아 있는 책을 회수하고 판매된 책들도 독자를 찾아내 수정된 책으로 교환해 주기로 했다. 문제가 된 글이 실린 '소설2'는 3000부가 제작돼 920여부가 전국 서점에 배포됐고, 이 중 700부 정도가 팔린 상태다.
출판사측이 수습에 나섰지만 김성동씨는 "책을 즉각 회수하지 않고 두 달 이상 방치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문예계간 '실천문학' 여름호에 단편 '발괄하는 앵벌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작품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 출판사의 책임을 지적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작가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