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조윤석은 '엄친아'로 불린다.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인데,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기는 힘들지만, 모든 엄마들은 (특히 야단칠 때) 그런 아들을 둔 친구가 있다.
조윤석이 그런 별명을 얻은 건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졸업해 스웨덴에서 석사를 하고, 며칠 전엔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준비하면서 만든 물질로 미국에서 특허도 냈다. 논문제목은 'RAFT 중합법을 이용한 약물 및 유전자 전달체'라는데, 쉽게 말해 캡슐로 심장병을 치료하는 뭔가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는 모던록 밴드 '미선이'로 출발해 1인 프로젝트 '루시드 폴'로 음반 세 장을 냈다. 시와 산문과 일기를 섞은 듯한 가사, 피아노 또는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소박한 음악, 메말라서 애닯게 들리는 음색이 특징이다.
그가 '엄친아'인 건 공부와 음악 때문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불어·독어·이탈리아어 중 하나로 번역해야 하는 박사학위논문 초록을, 3개 언어는 물론 한국어·일어·중국어·스웨덴어 등 총 12개 국어로 번역해 제출했다. 학위발표 때는 한국에서 한복과 갓, 고무신까지 구해서 차려 입어 화제가 됐다. 그는 유머감각도 있고 발랄하기까지 한 것이다(이쯤 되면 그의 어머니를 경계해야 한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취재하러 스위스에 갔던 지난 13일 조윤석을 만났다. 그는 새 음반 인터뷰라도 하듯 말쑥하게 차려 입고 맵시 있는 모자까지 쓰고 나왔다.
그는 올해 말까지 스위스에 머물며 박사후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뭘 하게 될지 정말 모른다"고 했다. 브라질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 다음 음반은 브라질 바이아(Bahia)에 가서 삼바 음악으로만 채울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생명공학과 관련된 직업을 갖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엄친아'의 정수를 보여줬다. "글쎄요. 저는 음악하는 사람이거든요. 공부는 좋아하고 재미있으니까 한 거죠.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선택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많아요." 그와 헤어지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잘 나가는 엄마친구 아들을 괜히 미워하던 옛 학창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입력 2008.07.1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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