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이번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진단도 처방도 시원스럽지 못하다. 회복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경제학은 그렇게 무력하냐고.
경제학이 시원스러운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경제 활동과 같은 사회적 현상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크고 정교한 이론도 사회적 현상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따름이다.
지금 주류 경제학은 균형의 관점에서 경제 현상을 바라본다. 가격 기구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현상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니지만, 그것만으로 경제의 복잡한 움직임이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주류 경제학은 정태적 이론이어서, 빠르게 움직이는 경제를 단기적으로 포착할 따름이다. 경제가 움직이는 모습을 설명하는 동태적 이론은 만들기가 워낙 어려워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경제 전체의 장기적 움직임을 설명할 능력이 부족한 이론에 의존하는 셈이다.
이번 위기에 경제학이 유난히 무력한 것은 집합적 행태(collective behavior)를 다룰 이론적 틀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체계는 개별 입자들의 행태를 단순히 합친 것과는 다른 독특한 행태를 보인다. 이런 집합적 행태는 입자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런 집합적 행태를 보인다. 사람이 의지를 지녔다는 사실은 집합적 행태가 나오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집합적 행태의 두드러진 특질은 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상전이(相轉移·phase transition)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전이의 예는 액체인 물이 섭씨 0도에서 고체인 얼음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온도나 압력과 같은 변수들이 어떤 임계치를 넘으면, 모든 입자들이 같은 행태를 보여, 체계의 상(相)이 갑자기 바뀐다. 기체가 액체로 바뀌는 액화와 낮은 온도에서 전기의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도 상전이다.
사람들의 행태에서도 상전이가 일어난다. 사람은 둘레의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를 따르는 성향을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떼지어 몰려다니는 짐승들의 무리처럼 행동한다. 큰 자극이 주어지면, 모두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되고, 상전이와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 나온다.
이번 금융 위기를 부른 공황(panic)은 전형적이다.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일정 수준보다 많아지면, 문득 모두 위험을 회피하게 된다. 그래서 투매가 나오고 신용 거래가 끊긴다.
공황은 흐르던 강물이 문득 얼어붙어 빙하가 되는 것과 같다. 모두 두려워서 위험을 부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 거래가 끊기고 경제가 얼어붙는다. 지금 여러 정부들이 내놓는 대책들은 모두 빙하를 녹여 다시 강물로 흐르도록 하려는 시도다. 안타깝게도, 경제학이 이런 현상을 다룰 이론적 틀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처방을 제때에 내놓지 못한다.
경제학의 실상이 그러하므로,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경험에 많이 의존한다. 지금 상황과 많이 비슷한 경우는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다. 사람들이 벤 버냉키(Bernanke) 미국 중앙은행 의장을 신뢰하는 것은 그가 대공황을 깊이 연구해서 좋은 교훈들을 얻어낸 경제학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학이 부족하고 상당히 비현실적인 것은 당연하다. 이론이 정확하게 설명하기엔 현실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그렇게 부족한 경제학이 그리도 많이 이루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19세기까지 세계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0퍼센트에 가까웠지만, 경제학 덕분에 지금은 4퍼센트를 넘는다.
현실의 어려움과 경제학의 부족함은 가슴을 누르지만, 눌린 가슴 밑바닥으로는 묘한 안도감이 번진다. 사람들의 행태가 몇 만 개의 방정식들로 이루어진 경제 모형 안에 깔끔하게 담길 수 있다면, 우리는 좀 초라해진 느낌이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