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주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돌아온 친구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어꾀나 한다고 자부하는 자신도 호주토박이 인디언들의 말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원어민들은 너무도 쉽게 그 '이상한' 인디언 발음을 알아듣는다며,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고 했다.

이 친구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영어 발음교육에 대한 좋은 힌트를 준다. 물론 영어에서 발음은 생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음을 잘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발음을 '누구에게' 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답은 그리 쉽지 않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 영어 발음교육도 교육의 대상이 어린이인지 성인인지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진다. 또한 학습자의 수준과 특성에 따라 사용되는 학습활동(Activity) 자료나 학습과제(Task)도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어 선생님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거나, 영어발음에 자신이 없는 경우라면 발음교육의 어려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영어발음을 잘하면 영어를 잘 한다'는 등식 속에는 '영어도 잘 가르친다'는 터무니 없는 편견이 숨어있는데, 이것 또한 국제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나온다.

그럼 처음에 언급했던 '이상한' 인디언들의 발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원어민들이 그 '이상한' 인디언들의 말을 어떻게 잘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인디언들이 하는 말들을 모음 하나, 자음 하나 따져가며 정확하게 가려 듣기보다는 주요 단어, 즉 인디언들이 말하는 문장들 중 내용어들에 얹혀지는 강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What are you trying to help me for?" 라고 인도 사람이 말했다면 trying이 마치 스페인어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trying'이란 한 단어의 발음이 이상해서 전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은 trying to를 '트라이너'라고 발음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어의 모음과 자음에 기초한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모음과 자음은 그 자체로도 소리가 있으나 실제 대화에서 사용될 때는 말 속의 다른 단어들이나, 말의 속도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What are you trying to help me for?'라는 문장을 가르친다면 발음뿐만 아니라 what, trying, help 같은 단어(내용어)들이 어떻게 강세를 받는지를 이해시키고 숙달시키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문장뿐만이 아니라 한 단어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Orange를 '오렌지'라고 발음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첫 음절의 모음 'O'에 강세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석봉 조선일보·옥스포드 테솔 센터 소장

원어민을 통해 영어를 배운 아이들의 발음이 더 나은 것은, 철저한 발음교육보다는 아이들의 발음이 원어민 선생님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발음교육의 핵심은 말 속의 강세를 잘 이해시키고 숙달시키는 것이다. 국제화시대의 바람직한 영어발음은 의사전달이 잘되는 발음이지 영어원어민을 흉내 내는 발음이 아니다. 자신의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아 자신없는 영어 선생님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국제어로서의 영어발음은 글자 하나하나의 소리를 강조하는 발음이 아니라 말속의 강세를 통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발음임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말하고 가르치기를 바란다.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발음교육, 이것이 진정한 '파닉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