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작은 항구도시 빌바오. 주력 산업인 철강·조선 산업이 아시아 국가에 밀리면서 경기침체에 빠진 빌바오가 선택한 활로는 건축과 문화였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독특한 외관으로 1997년 완공되자마자 단숨에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빌바오는 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다. "와, 어떻게 저런 건물이 있어"라고 감탄할 만한 기발한 건물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두고,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빌바오의 성공을 계기로 스타 건축가를 통한 도시마케팅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자크 헤어초크, 노먼 포스터, 렘 콜하스 등 '스타 건축가'를 총동원, 이색적인 경기장과 건물을 지어 베이징을 '모던 시티'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동의 오일 부국(富國) 아부다비도 무려 270억 달러를 투자해 프랭크 게리, 장 누벨,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 등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박물관·공연장을 통해 일거에 관광문화 중심지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우리도 '빌바오 경쟁'에 합류하고 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새로 짓는 '디자인플라자&파크'의 설계를 스타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맡겼다. 경기도 광교 신도시 등 상당수 대형 프로젝트에도 해외 유명 건축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 건축가들에게 많은 설계가 몰리다 보니 전 세계에 비슷비슷한 건물이 난립하고 유명세에 걸맞지 않은 졸작도 많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민간 건물 중에도 해외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 꽤 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걸작은 많지 않다. 아무리 거장이라고 해도 만드는 작품이 모두 명작일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 유명 건물 하나가 그 지역의 운명을 바꾼다는 빌바오 효과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수많은 도시들이 '제2의 빌바오'를 선언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지만 빌바오의 절반만큼 성공한 도시도 찾기 쉽지 않다. 빌바오 미술관 설계자 프랭크 게리조차도 최근 "건물 한 개가 지역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빌바오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항, 지하철역사 등 도시 전체 활성화에 대한 철저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건축 디자인은 명물과 흉물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파리의 에펠탑은 건립 당시 지식인들이 도시 경관을 망친다며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명물로 사랑받고 있다. 반면 미국 세인트루이스 푸르이트이고 주택단지는 건립 당시 건축가협회상을 받을 정도로 찬사를 받았지만 20년도 되지 않아 흉물로 지탄받으며 폭파 해체됐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의 매력을 단숨에 높이는 비법은 없다. 도시 전체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건물들을 만들어가는 꾸준한 노력이 도시를 변화시킨다.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역으로 꼽는 인사동과 삼청동, 젊은이들의 명소인 홍익대 앞 피카소 거리와 강남 가로수길은 특정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다. 작지만 특색 있는 건물과 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독특한 풍경이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작지만 매력 있는 건물과 거리를 하나하나씩 만들다 보면 빌바오를 능가하는 '서울 효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