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씨는 외환위기 이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매각작업을 맡았던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그가 관료로서 절정이던 시기에 처리한 은행 매각과 구조조정 업무는 그를 추락의 길로 내몰았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현대차 부채탕감 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무죄와 유죄 판결을 번갈아 받으며 구치소를 오가는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변씨는 행정고시 19회로 공직에 들어와 재무부·재경원에서 일하며 금융 분야 요직을 화려하게 거쳤다. 고시 동기 중 선두주자로, 장관감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외환위기 때는 재경원 국제금융과장으로 외채 협상 실무에 참여하며 국제 금융계에서 '미스터 변'으로 통했다. 재경부 핵심 요직인 금융정책국장(옛 이재국장)을 역대 최장수인 2년10개월 동안 지내며 외환·조흥은행 매각을 담당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변씨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은행 매각에 총대를 멨다"고 말했다.
그는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1급)으로 있던 2005년 1월 "외국 자본에 대항하는 토종 펀드를 세우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나와 사모(私募)투자펀드인 '보고펀드'를 설립했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인생은 2006년 6월 대검 중수부에 긴급 체포되면서 가시밭길로 바뀌었다. 관청가에선 그가 힘있는 재무관료의 대표 인물로 검찰에 '찍혔다'는 분석과 함께, 뻣뻣하게 보일 정도로 고집 강한 그의 성격이 검찰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의 불운한 운명을 보면서 관료 사회에선 "앞장서 봐야 자기만 다치니 문제 소지가 있는 업무는 피하는 게 낫다"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증후군)'이 생겼다. 그의 사례는 감사원이 작년 12월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덜어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