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생포항에서 활기가 사라진 것은 1986년부터다. 그해부터 한국은 국제포경위원회(IWC)의 포경(捕鯨)금지 결의안을 지키기 시작했다. 1940년부터 매년 6개월 동안 동해를 누비던 포경선과 포수들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포경선의 명(名)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손남수(73)씨는 당시의 광경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포경선이 고동을 울리며 귀환할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했다. 그는 "고래를 해부하는 해부장이 고래고기를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등 인심도 후했다"고 했다. 포경이 자유로울 때 고래고기의 80~90%는 서민들의 차지였다. 그런데 1986년 이후 고래고기 값은 쇠고기보다 비싸졌다. 부자들만이 누리는 호사가 된 것이다. 손씨는 "고래가 부위별로 12가지 맛이 난다지만 알고 보면 전체 부위가 다 맛이 다른 독특한 고기"라고 했다.

장생포 주민 수는 포경업이 성시였을 때 1만 1000여명, 초등학생만 20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지금 장생포 전체 주민은 겨우 1700명도 안 되는 썰렁한 어촌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포경금지를 제한적인 허용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노(老)포수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그런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울산 장생포항에서는 2007년 3월부터 매주 수요일 고래탐사선이 뜬다. 비록 17t짜리 어업지도선을 개조한 것이지만 고래탐사선에는 장생포 주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고래 수가 늘었고 어선들로부터 잇따라 고래를 봤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울산시가 고래 이동 경로 추적에 나섰기 때문이다.

기자가 고래탐사선에 탑승한 날은 제법 흐린 날씨였다. 파고(波高)가 2~3m 수준으로 항해에는 문제가 없었다. 선원들은 "이 정도면 '서울 사람들에게 밀리가(밀려서) 배 못 탄다는 날씨라고 말할 정도'로 기상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선장 신오한(52)씨는 "이런 날 고래가 자주 보인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날 출항에는 선장과 선원 3명 그리고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의 공동대표 정일근씨 등 12명이 함께 했다. 정씨는 중앙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정병선 기자 울산 장생포에서 출항 대기 중인 고래탐사선. 매주 수요일 고래를 찾아 나선다. 탐사팀은 갑자기 나타난 고래를 보는 순간 황홀한 느낌에 빠진다고 했다.

시속 16노트로 장생포항을 나선 탐사선은 동해상 12마일 전방을 목표로 항해했다. 탐사선에는 GPS(위성항법장치)시스템·레이더·어군 탐지기 등이 갖춰져 있었다. 어군 탐지기에는 어족들의 이동 모습이 포착됐다. 선실과 갑판에 자리한 탑승객들은 30분이 지난 뒤부터 고래찾기에 나섰다.

신 선장은 "육지에서 3.5마일(5.3㎞) 지나면서 고래가 발견되기 시작한다"면서 "육지에 8마일 떨어진 곳이 가장 많은 고래 출몰 구역"이라고 말했다. 탐사선이 1시간30분 정도 항해를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탑승한 정일근씨 등 시인 3명이 동시에 "고래다"라고 소리쳤다.

그 방향으로 눈을 돌렸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고래의 자취가 보였다. 밍크고래였다. 꼬리를 치켜세우며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고래는 인간의 심장을 짜릿하게 했다. 고래가 나타난 곳은 미포 해상 7마일로 북위35도 32, 동경 129도 36 지점이다. 밍크고래는 t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황금어종이다.

밍크고래 출몰 이후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30분 동안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느낌뿐이었다. 선장은 12마일 목표지점까지 항해한 뒤 귀항할 때는 지그재그 식으로 배를 몰았다. 요리조리 다니며 고래 관찰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는 상괭이(등지느러미가 없는 고래)가 자주 출몰한다는 우가 해상으로 항해했다. 이덕암 등대에서 0.9마일 해상에 이르자 상괭이들의 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10여 마리의 상괭이가 동시에 배 뒤, 좌우에서 쇼를 펼쳤다. 파도를 헤치면서 나가는 상괭이 모습에서 희망마저 넘실거렸다.

울산시가 지난해 매주 수요일 고래탐사선을 출항시켜 고래를 관찰한 결과 동해상에서 고래 발견율은 46%다. 38일 출항해 기상악화로 10일은 회항했지만 28일 동안의 탐사를 통해 13일 동안 고래를 관찰한 것이다. 고래 종류도 참돌고래·밍크고래·낫돌고래·상괭이 등 다양했다.

정일근 시인 제공 고래가 돌아왔다! 고래의 등장으로 울산은 술렁인다. 고래를 상품화하려는 시(市)의 노력에다 포경 재개 여론이 일면서 포경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장생포 주민들은 다시 포경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송창식 노래처럼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날 수 있을까.

울산시 항만수산과 박승철 고래업무 담당관은 "지난해 4월과 5월 참돌고래 2000~3000마리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두세 바퀴 회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맛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도 낫돌고래 300~500마리가 해상에 출몰해 장관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정일근씨는 "고래 떼를 보는 순간 황홀경에 빠졌으며, 고래 떼의 비상이야말로 육지의 어떤 장관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막힘 그 자체"라고 했다. 이처럼 동해에서 고래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일반인들의 고래에 대한 관심도 부쩍 달아올랐다.

울산광역시는 고래를 테마로 한 사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3080억원을 투자해 고래도시를 만들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고래관광을 테마로 도시 문화상품 개발과 더불어 고래박물관·고래연구소 등을 엮어 고래 도시 이미지를 심는다는 의욕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울산 남구청은 장생포를 중심으로 한 고래특구 지정을 발판으로 이참에 고래사냥 재개 여론을 조성하면서 어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오는 4월에는 국립과학수산원에서 해상 탐구선으로 이용했던 260t급 '탐구5호'를 개조해 고래 관광선을 띄워 해양 고래 관광시대를 열 계획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동해를 중심으로 1만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래를 두고 울산에서는 관광과 포경 사이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김두겸 남구청장은 "고래의 하루 포식량은 사람 3000명분에 해당한다"며 "먹이사슬 최 정점에 있는 고래들이 너무 많으면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기 때문에 일정량을 잡는 방안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민들도 "23년간 고래잡이가 금지돼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포경을 허용할 시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오징어나 꽁치를 잡는 일부 어민들은 고래가 어업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고래가 어군을 쫓아다니며 오징어·꽁치 포획 방향을 잃게 하거나 그물을 작살낸다는 것이다.

국내 일부 포경전문가들은 "포경이 성시였을 때 고래 300두만 잡아도 전국적인 수요를 충족했다"며 "이제 정부도 일방적으로 포획을 금지할 게 아니고 일본처럼 고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뒷받침을 통해 고래에 대한 보존과 생태계 유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고래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여 이 결과를 IWC에 제출하며 매년 연구 목적으로 제한 없이 고래를 포획하고 있으며 중소형 고래잡이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이 연구목적으로 잡는 고래는 매년 1000두 이상으로 알려졌다.

사실 포경이 금지된 뒤에도 고래고기는 유통되고 있다. 업자들은 전국 150여 식당에서 고래고기를 판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국이 그물에 걸려 죽은(혼획) 고래고기 유통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은 매년 500두는 그물에 걸려서, 100두 정도는 불법 포경으로 잡은 것이라고 추산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은 "한반도 주변에 서식하는 고래에 대한 개체 수와 종류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지원이 절실하다"며 "IWC와의 협조를 통해 제대로 된 연구자료를 제출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만 우리도 고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