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의 아전인수 격 행태가 드러났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별관에 입주한 선물회사들이 주문체결 속도면에서 타사보다 유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별관에 입주해있는 KB선물과 부은선물, NH투자증권, 리딩투자증권의 시스템이 '코스콤'의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거래소 매매체결시스템과 직접 연결돼 있었던 것.
이 때문에 이들 4개사의 선물옵션 매매주문 체결속도는 0.012초로 0.016초인 다른 증권사·선물사에 비해 0.004초 빠르다. ◇주문체결속도 문제 제기한 삼성증권, 아전인수 격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난 4일 최근 주요 증권사의 실무 부서장,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들과 회의를 갖고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회의 과정에서 거래소 지하 1층에 코스콤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만들어 거래소 회원사들의 주문 서버를 모두 모으면 주문체결 속도가 같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으며, 코스콤은 오는 12월1일부터 인터넷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수 있다고 밝혀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인터넷데이터센터가 가동될 경우 주문체결 속도 문제 논란도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에 반대표를 던진 회사가 삼성증권이었고 한국거래소 실무자 역시 의견에 탐탁히 여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 A씨는 "주문체결속도 차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시킨 업체가 삼성증권"이라고 소개했다.
A씨는 "삼성증권이 인터넷데이터센터를 설치하지 않고 거래소 별관에 있는 4개사 시스템을 밖으로 빼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사실 삼성증권과 삼성선물이 거래소 별관에 입주하기 위해 로비를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공간이 나지 않는 바람에 입주를 포기한 삼성증권은 '꿩 대신 닭' 격으로 KT 건물로 시스템을 옮겼다. KT건물에 시스템을 두면 일반 통신망을 통해 한국거래소 시스템에 접속하는 업체들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주문체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우연찮게도 삼성증권의 선물옵션 분야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A씨는 "KT 건물에 시스템을 설치하면서 비용이 100억 원이나 들어갔는데 실적이 안 좋아지니 눈치가 보인 삼성증권 고위층들이 주문체결 속도를 트집 잡아 핑계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A씨는 삼성증권의 속셈이 거래소 내 업체들의 시스템을 밖으로 끌어내 모두 KT나 데이콤 통신망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KT건물 내에서 KT망과 직접 연결되는 삼성증권이 주문체결 속도 면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A씨는 한국거래소 측과 일부 언론의 태도도 문제 삼았다. A씨는 "거래소 일부 인사가 삼성증권 측으로부터 얼마나 시달렸는지 마치 삼성증권 측 대변인처럼 보였다"고 꼬집었다. 또 그는 언론 역시 삼성증권이 흘린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는 데 급급했다며 거래소와 언론 모두 '삼성'이라는 이름에 압도됐다고 지적했다.
◇체결속도, 차별화가 대세
A씨는 주문체결 속도 문제 자체가 미국에서는 이미 결론이 난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거래소는 지난 2000년 접속 속도 문제가 불거져 한때 주문체결 속도를 일치시켜야한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뉴욕거래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규정을 폐지했다. 접속속도 규제가 오히려 고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미국은 고객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체결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즉 주문체결 속도를 따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 과정에서 열린 한 회의석상에서 한 거래소 관계자는 파생상품시장업무규정 65조 제4항을 들어 주문체결 속도와 관련해 개선을 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생상품시장업무규정 65조 제4항은 '거래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회원파생상품시스템 및 회원파생상품단말기의 사양, 설치장소 등에 관하여 조건을 붙이거나 변경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거래소 관계자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항 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란 현저한 불공정이 있는 경우를 뜻한다"며 "만약 현저한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거래소가 시스템 이전을 명령한다면 이는 권한 남용이 된다"고 말했다.
A씨는 일각에서 나온 '주문체결 속도 차이는 고주파 거래(HFT, High Frequency Trading)와 같다'는 지적도 정면 반박했다.
고주파 거래란 금융회사들이 월등한 컴퓨터 성능을 무기삼아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주문정보를 접하기도 전에 이를 파악해 미리 주식을 매매하는 것을 뜻한다.
A씨는 "고주파 거래는 일종의 전산조작 행위로서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