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경제부 차장대우

요즘 독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정당은 거대당인 CDU(기민당)나 SPD(사민당)가 아니다. 신생 소수당인 해적당(Piratenpartei Deutschland)이다. 위조 출판물을 뜻하는 '해적판'에서 유래한 황당한 이름의 이 정당은 독일의 젊은이, 특히 네티즌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7일 치러진 연방총선 결과가 그 증거로 인용된다.

이번 총선에서 해적당은 독일 전역에서 총투표의 2%를 득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CDU(27.3%)나 146년 역사의 SPD (23%)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국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06년 9월 10일 베를린의 한 건물에서 53명이 발기인 대회를 가진 지 불과 3년 만에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해적당은 벌써 녹색당에 이어 독일의 7위 정당, 최대 소수당으로 등장했다. 해적당원들은 요즘 "1980년대 녹색당도 시작이 미미했다"며 '제2의 녹색당 돌풍'을 자신하고 있다.

총선이 끝난 날 베를린 시내의 해적당 당사에서 열린 파티는 정치행사라기보다는 축제였다. 젊은 여성들은 해적처럼 뺨에 해골 문신, 턱에는 수염을 그려 넣고 연방 환호성을 질러댔다. 장발의 남성들은 반팔 셔츠 차림으로 맥주잔을 들이켰다.

해적당은 인터넷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된 정당이다. 16세 이상이 가입하는 당원들의 수는 이미 1만명을 넘어섰고, 평균 나이는 31세이다. 오렌지색 깃발을 휘날리고 공식적인 약칭으로 'PIRATEN(해적)'을 사용한다. 해적당은 IT(정보기술)와 인터넷의 발달, 디지털 혁명으로 독일 국민들의 모든 생활영역이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문명의 이기(利器)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최대한 이용(利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정부의 지나친 인터넷 검열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인터넷에 더 많은 자유를!(Mehr Freiheit f�jr das Netz!)' 이 단순한 구호로 해적당은 짧은 시간 내에 인터넷 행동주의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독일 정치무대에 전격적으로 등장했다.

해적당이 큰 성과를 거둔 이유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정치적으로는 거대정당들의 연정(聯政) 시대에 참신한 야당에 대한 갈망이 컸다. 경제적으로는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시간여유가 있는 '청년백수'들이 인터넷과 해적당을 통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독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해적'이 되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최근 해적당을 딜레마에 빠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SPD 출신의 외르크 타우스 연방의원이 인터넷 자유를 옹호하면서 해적당으로 이적했는데, 그가 아동포르노물을 보유하고 배포한 혐의로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해적당 간부들은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며 타우스 의원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 학대'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거세다. 반(反)해적당원들은 해적당의 기치 중 하나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해적당 공격에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해적당은 궁극적으로는 좌파, 우파의 이념투쟁이 없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권·자유와 직결된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외교문제, 국방문제, 의료·복지문제 등 구체적 사안에는 침묵하고 있다. '고상한 이념'과 '현실' 간의 괴리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정당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독일의 유력 신문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성과가 많은 실패(erfolgreich gescheitert)"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