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주요 이정표가 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장벽을 무너뜨린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혹자는 1987년 장벽 앞에서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연설한 로널드 레이건(Reagan) 미 대통령을 꼽고, 혹자는 공산권 개방을 선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Gorbachev) 옛 소련 대통령을 내세운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한 대중 전체를 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당시 급작스러운 장벽 붕괴를 촉발시킨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보도했다.

사건은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기자회견장에서 시작된다. 당시 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Schabowski)는 이 기자회견에서 동독인들의 해외여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주변국 외에 동서독 국경을 통한 출국도 가능케 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연일 커져가는 시위를 무마하려는 의도였다. 문제는 샤보브스키가 새 조치를 숙지하지 못한 상태로 회견장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는 당 지도부가 새 여행 규정을 결정하는 동안 휴가로 자리를 비웠다가 기자회견 당일에야 문서를 건네받았다. 회견장에는 국내외 기자들이 가득했다.

1989년 11월 11일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고 있던 장벽을 동독인들이 넘어오려 하자 다른 시민들이 손을 뻗어 도와주는 모습.

그가 여행 자유화에 대해 운을 떼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질문을 던졌다. "의미가 뭔가?" "언제 발효되나?" "서베를린에도 적용되나?" 등등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당황했고, 들고 간 문서를 정신없이 뒤적이며 즉석 답변을 짜냈다. 귀를 쫑긋 세운 기자들은 발표 내용이 국경 개방을 뜻하며, 그것도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날 밤 샤보브스키는 자신의 브리핑 결과를 서독 TV방송을 통해 봤다. 화면 속 베를린 장벽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국경수비대는 사전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혼돈에 빠졌다. 그들은 발포를 해서라도 인파를 해산시켜야 하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검문절차를 포기하고 국경을 개방했다. 이로써 베를린 장벽은 역사의 유물이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샤보브스키를 혼돈에 빠뜨린 결정적 질문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다시 논쟁이 붙었다. 지금까지는 이탈리아 통신사인 ANSA의 외신기자 리카르도 에르만(Ehrman·80)의 공으로 간주됐다. 그는 자신이 여행 자유에 관한 첫 질문을 던졌으며, 답변을 듣고서 재빨리 회견장을 떠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헤드라인을 송고했다고 한다. 지난해 독일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의 그의 끈기가 마침내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발언을 이끌어냈다"며 최고 영예인 '연방 십자 훈장'을 에르만에게 수여했다.

하지만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차이퉁의 피터 브링만(Brinkmann·64) 기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여행 자유화의 발효 시점 등에 관한 결정적 질문을 던진 이는 자신이라며 "TV 화면엔 에르만과 샤보브스키만 잡히지만 목소리는 나"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기자회견 3시간 전에 도착해 맨 앞줄 가운데에 자리 잡은 반면 에르만은 뒤늦게 도착해 연단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가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는 것.

당시 동독 TV 자료 화면에는 진상을 가려줄 약간의 단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 도중 "정부는 동독인이 서독으로 여행하는 것이나 이민 가는 것을 허용키로 결정했다"고 답한다. 그러자 기자 3명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에르만과 브링만 외에 '미국의 소리'(VOA) 기자까지 가세했다. 마침내 "언제 발효되나?"라는 핵심적인 질문이 반복해서 터져 나온다. 샤보브스키는 문서를 뒤적이다 몇 단어를 내뱉는다. "즉시, 지체없이." 하지만 이 질문자의 신원은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고 WSJ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