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모임이 잦다. 그런데 떠들썩한 자리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친구를 잘 살펴볼 일이다. 외로움이 독감 바이러스처럼 친구 사이와 같은 사회관계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행복감도 같은 방법으로 전파된다. 과연 나는 '고독 바이러스'에 전염됐을까, 아니면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됐을까.
◆외로움은 세 단계 건너까지 영향 미쳐
흔히 외로움은 내성적이거나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들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시카고대의 심리학자인 존 카시오포(Cacioppo) 교수는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 12월호에서 "외로움은 사회현상이며 질병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된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1948년부터 미국 프레이밍햄(Framingham)지역에 사는 5200여명을 추적해 심장병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연락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사 대상의 친·인척이나 친구관계도 정기적으로 조사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회관계 연구의 모델이 됐다.
카시오포 교수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의 제임스 파울러(Fowler) 교수와 하버드대 의대의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Christakis) 교수와 함께 1983년부터 프레이밍햄 연구 참여자 4500여명을 2년 간격으로 일주일에 얼마나 자주 외로움을 느꼈는지 조사했다.
조사결과 한 사람이 외롭다고 느끼면 2년 뒤 사회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 즉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52%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의 전염효과는 사회적 관계가 멀어질수록 약해졌지만 3단계 분리까지는 확실히 나타났다. 한 사람이 외로우면 친구의 친구, 친구에까지 전염된다는 말이다.
외로움은 불신이나 부정적 감정을 통해 전염됐다. 예를 들어 내가 외로움을 느끼면 친구에게 인상을 쓰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기 쉽다. 그런 대우를 받은 친구는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대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식으로 나는 친구를 잃고 친구도 다른 친구를 잃는다. 조사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4년간 친구가 약 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강했다.
친구가 줄면 점점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앞선 연구에서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친구가 많은 사람보다 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시오포 교수는 "털실로 뜬 옷이 끝자락에서부터 풀어지듯 사회관계가 주변부에서부터 붕괴하는 것"이라며 "결국 외로움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밝혔다.
◆행복 바이러스도 사회관계 통해 전염돼
반대로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외로움 연구에 참여했던 파울러, 크리스타키스 교수 연구진은 앞서 지난해 12월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역시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의 전파 경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983년부터 2001년까지 5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 직전 한 주의 감정 상태를 물었다. '나는 삶을 즐긴다' '나는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다' 등의 질문이다. 60%는 이런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분류됐다.
조사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행복한 사람은 행복감이 15.3%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효과는 세 단계 건너까지 나타났다. 만약 옆집 사람의 친구가 행복한 사람이면 나의 행복감이 9.5% 높아졌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5.6% 행복감이 늘어났다. 친구는 가까이 살아야 행복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었다. 보통 1.6㎞ 이내에서 효과가 났다. 또 친구든 이웃이든 성별이 같은 경우에 효과가 컸다.
사회네트워크 전문가인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는 "질병이나 비만, 마케팅효과처럼 정량화가 가능한 문제에서는 사회네트워크를 통한 전파가 많이 입증됐다"며 "이번 연구는 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정량적으로 분석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 항공기 편수와 좌석 수, 비행 거리가 사회네트워크를 통한 전파의 정량화 수단이 됐다. 실제로 일부 북구 국가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50㎞ 이상 항공여행이 질병 전파에 효과적임을 확인하고 그 이하로 항공여행을 제한했다. 정 교수는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제 처방건수 등을 부정적 감정의 전파지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