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태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드러내던 그가 4대강 사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수락하다니…" "그의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허무하고 처참하다"….
한 생태학자의 '변신(變身)'이 4대강 사업 반대진영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17일 국토해양부 소속 4대강사업추진본부 홍보실장 겸 환경부본부장(전문계약직공무원 1급)에 차윤정(44) 경원대 산업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임명되자 환경단체 사이트와 인터넷 서적사이트 등엔 이런 원망 조의 댓글들이 쏟아졌다.
차씨는 '신갈나무 투쟁기' '나무의 죽음'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등 숲 생태계와 관련한 저서를 통해 환경운동가·전문가 사이에서 '대표적인 환경론자'로 각인돼 왔다. 환경운동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과학적 지식과 감수성 넘치는 유려한 문체의 저술을 통해 "환경에 대한 가치를 누구보다 강력하게 설파해 왔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차씨의 '신갈나무 투쟁기'를 읽고 '왜 우리(환경운동가)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나'라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도 있다"며 "어줍잖은 환경운동가 몇 사람보다 훨씬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컸는데 전혀 뜻밖의 변신"이라고 말했다.
차씨의 4대강 홍보실장 임명 소식을 전한 인터넷 글들엔 "아침 식사를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환경론자들의 '동지'로 여겨졌던 차 실장은 4대강 사업의 대변인으로 변신한 이유에 대해 본지 인터뷰에서 "학자적 양심에 따라 평소 소신을 펼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떤 소신인가.
"지금의 강 생태계는 한계적 상황에 처해있다. 연중 절반 이상은 강물이 말라 어떤 수(水) 생태계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강에 물이 풍부해야 물고기를 비롯한 생태계가 풍성해진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풍요로운 하천 생태계와 강변 풍경을 만들고 싶다."
―물 확보를 위해 보(洑·댐)를 세우고 준설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모래사장은 사람의 정서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물고기에겐 사막이나 마찬가지다. 강을 준설해서 물이 풍성한 '젊은 하천'을 만들어야 한다. 노년기(老年期)인 우리 하천엔 수만년 동안 퇴적된 토사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낙동강은 최근 10년간 준설로 하천 바닥이 이미 대폭 낮아졌는데.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답변을 보류하겠다."
―준설을 하면 하천 생태계가 큰 타격을 받지 않는가.
"일시적인 교란은 있겠지만 자연은 그리 나약하지 않다. 4대강 공사가 끝나면 생태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으로 복원될 것이다."
―그간 쓴 책을 보면 환경론자의 입장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나.
"그렇지 않다. 책에서는 숲·나무·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과학적인 팩트(fact·사실)나 생태계의 원칙을 다뤘지, 어떤 가치 판단을 얘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식의 자연보전보다는 자연의 활용을 주로 연구했다. 4대강 사업은 국가 수자원관리의 일환이므로 자연이 (사람에게) 일정 부분 불가피하게 양보해야 할 부분이 있다."
차씨는 4대강 반대진영이 제기하는 수질(水質) 문제와 홍수·가뭄 대비 등 4대강 사업의 또 다른 이슈에 대해선 "물그릇이 커지고 오염원을 차단하면 수질은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