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내 전화로 시외 통화를 하려면 9번부터 누른 뒤 1번과 지역번호를 누른다. 한 직원이 9 다음에 실수로 1을 두 번 눌렀다가 발신음이 울리자 얼결에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누군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 와 "거기 별일 없느냐"고 거듭 물었다. "여기는 911인데 방금 전화가 왔다가 끊겼다"고 했다. 몇 분 뒤 회사 앞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경찰차·소방차·구급차가 들이닥쳤다. 어느 주도(州都)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동포의 경험담이다. 그는 끊긴 전화도 일단 출동해 확인하는 911에 감탄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911은 화재·범죄·응급 신고를 한꺼번에 받는 전화다. 영국이 1930년대 채택한 세자릿수 긴급전화 999를 본떴다. 일본은 다이얼 돌리는 시간이 짧은 112로 정했다가 오접(誤接)이 잦자 119로 바꿨다. 우리도 1935년 119를 시작해 지금에 이른다. 일본 범죄신고 전화 110처럼 112를 따로 만든 건 1957년이다. 수화기 거는 후크만 눌러도 1번이 발신되는 바람에 잘못 걸리는 전화가 많아 912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경찰은 안 믿어도 110은 믿는다"고 말한다. 110 신고센터는 '한 건의 전화도 놓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신고자가 전화를 걸었다가 끊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발신자를 추적해 확인한다. 장난 전화도 있지만 납치·감금당하거나 쓰러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4월 수원에서 오원춘에게 끌려간 여성이 112로 전화를 걸어 7분36초나 연결됐는데도 경찰이 헤매는 바람에 끔찍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지난주 서울 여의도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사내를 골목으로 몰아넣었던 40대 시민은 처음 범인을 보자마자 112에 신고했다. 그랬더니 어이없게도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기다리라"는 자동 응답이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 중에 걸려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112 전화가 열 통에 세 통꼴이라고 한다. 지난 7월 서울경찰청 112센터에 하루 평균 2만여통이 걸려와 29.4%, 6300여건이 통화 대기됐다. 1~6월 통화 중 비율도 30~32%였다.
▶그중에 절반, 전체 전화의 14%는 신고를 포기하고 끊었다. 이런 전화가 작년에 119만건이나 됐다. 받기 전에 전화가 끊겨도 발신지를 추적하는 미·일 경찰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인력이 달리고 거짓 전화, 오인 전화, 긴급하지 않은 전화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1초가 급한 사람에게 천연덕스럽게 "기다리라"는 녹음이 나오면 눈에서 불똥이 튈 일이다. 112를 비롯한 긴급전화체계, 고쳐도 단단히 뜯어고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