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시인은 2005년 교수 직선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뽑혔다. 황 시인은 "인생을 압류당한 셈인데, 어쩔 수 없이 관리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총장 자리에 올랐다. 총장이 되고 나서 보니 가장 큰 고민거리는 학교 발전 기금이었다. 대학 금고에 남은 발전 기금이 13억원뿐이란 걸 알곤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것이다. 옛날 대학 총장은 아카데미의 수장(首長)으로 돈과는 거리가 먼 자리였다. 이젠 모든 대학이 하나같이 경영 능력이 뛰어난 CEO 총장을 원하고 있다.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은 CEO형(型) 총장의 모델로 인용된다. 그가 20년 동안 재임해온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예일대 측이 지난달 30일 밝혔다. 레빈은 1993년 마흔여섯 살에 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예일대는 1500만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레빈은 경제학과의 동료 교수 데이비드 스웬슨에게 기금 운영을 맡겼다. 월가(街) 투자은행에서 펀드 매니저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는 스웬슨 교수는 파격적인 투자로 연평균 20% 수익을 올렸다.

▶레빈은 기부금을 걷는 데도 수완을 보였다. 취임 첫해 기부금은 32억달러였지만 작년엔 190억달러가 넘었다. 예일대 학비는 등록금, 기숙사비, 책값, 구내식당 밥값까지 합쳐 1년에 5만8600달러나 된다. 레빈이 유치한 장학금 덕분에 대다수 재학생이 그 혜택으로 공부를 계속한다.

▶예일대는 다른 명문대에 비해 이공계가 약했다. 레빈은 환경공학과 생명공학을 택해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공계 내실(內實)을 키웠다. 예일대는 레빈 퇴임을 아쉬워하며 총장선출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대학 안팎 인사들로 선출위원회를 구성해 자기네 학교 교수뿐 아니라 대학 밖까지 포함해 폭넓은 후보들 중에서 젊은 총장을 물색해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기는 전통이 있다. 역대 예일대 총장의 평균 임기가 15년이었다. 하버드대에선 찰스 엘리엇이 1869년부터 40년 동안 총장을 맡아 오늘의 하버드를 만들었다.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대 총장도 1929년부터 16년 동안 학교 경영을 맡아 명문대로 키웠다.

서울대에선 1946년부터 2010년까지 재직한 총장 24명의 평균 임기가 2.7년이었다. 사립대에선 직선제로 뽑은 총장이 논문 표절로 물러나기도 했다. 총장선출위원회가 뽑은 레빈은 강한 지도력으로 장기 비전을 펼쳤고 20년이나 재임했다. 언제쯤 되면 우리 대학에서도 총장이 10년, 20년 재임하면서 소신 있는 정책으로 대학을 발전시키고 레빈처럼 박수를 받으며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