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군의 군기(軍旗)였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이하 '욱일기')가 일본에서 당당하게 복권했다. 작년 말 아사히 맥주가 1892년 발매 맥주를 재현한 것이라며 욱일기 문양이 그려진 맥주를 '한정판'으로 발매하는가 하면 각종 스포츠 경기장에 욱일기가 응원용 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일본에서도 욱일기는 군국주의의 상징이어서 극우단체 회원들이나 애용하던 깃발이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듯 욱일기 컵, 욱일기 재떨이, 욱일기 티셔츠 등이 만들어져 생활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런던올림픽에는 올림픽 여자 체조단이 욱일기를 응용한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도쿄에서 열린 U20 여자월드컵 한국·일본의 경기에도 일부 관중들이 욱일기를 들고 응원을 했다. 일본인들에게 욱일기에 대한 비판을 하면 "도대체 왜 욱일기가 문제인가?"라는 식으로 반발한다.

(오른쪽 사진)히로히토가 든 욱일기 히로히토(裕仁·1901~1989) 일왕이 한 살 때인 1902년 욱일승천기를 들고 있는 모습.

◇욱일승천기의 복권

욱일기는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 국민들에게는 침략 전쟁에 대한 뼈아픈 기억을 되살리지만, 일본에서 욱일기는 이미 복권된 지 오래다.

일본 자위대는 오늘날 보란 듯이 욱일기를 공식 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해상자위대 군함마다 욱일기가 나부낀다. 육상자위대도 제국주의 시절 육군이 사용했던 욱일기를 약간 변형만 한 채 사용하고 있다.

군뿐만이 아니다. 민간에서도 욱일기 문화는 별 거리낌 없이 스며들어 있는 모습이다. 야구, 축구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들고 흔드는 모습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 음반 재킷의 표지, 어린이용 게임기에도 욱일기가 등장한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주장하는 일본의 대표 신문인 아사히 신문의 사기(社旗)도 욱일기 디자인이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여자체조단 유니폼을 디자인한 고시코 히로코(小篠弘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히노마루(日の丸·일본국기)를 배치하고 태양이 약동하는 힘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욱일기가 군국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제국주의 침략 전쟁 부정하는 일본

독일 등 유럽에서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지만, 일본 사회에서 욱일기가 아무런 제약 없이 활보하는 것은 과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다. 전범들을 기리는 도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있는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자살 특공대 대원들의 출사표가 적혀 있는 빛바랜 '욱일기'가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다.

욱일기 깃발 아래 수많은 아시아인이 학살됐을 뿐 아니라, 일본 자국민도 수백만명이 죽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유슈칸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이 실현된 것은 대동아 전쟁을 통해 일본군이 식민지 권력을 타도했기 때문"이라며 아시아 국가의 독립이 모두 일본의 침략전쟁 덕분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도 걸려 있다. 유슈칸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일본 전쟁책임자를 처벌한 도쿄전범재판은 잘못된 재판이다.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물론, 도쿄재판의 미국 측 검사와 재판관도 잘못을 인정했다"는 역사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의원 시절 "일본에 전범은 없다"고 주장한 것도 유슈칸적 역사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일부 극우파들로부터 시작된 역사 왜곡이 일본사회를 바꿔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