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판사 전용 게시판에 '초임 부장판사 일기'를 연재 중인 문유석(43·사진) 광주지법 부장의 글이 판사 사회에서 연일 화제다. 그는 지난 6월 초 본지 보도〈6월 1일자 A2면〉 이후에도 양형(量刑) 문제, 부장과 배석판사의 애증(愛憎) 같은 법원 안팎의 소재들로 '일기'를 썼다. 글을 요약해 싣는다.

◇영원한 고민, 양형

양형은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적어도 징역 10년은 되어야 엄벌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 등을 '엄벌주의'로 부를 수 있습니다. 엄벌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입장입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의 기본 형벌 이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동해(同害)보복과 엄벌주의입니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범죄율을 낮추는 데는 오히려 '필벌주의'가 더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엄벌주의는 능사가 아니지만, 일부 양형은 상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살인죄와 횡령·배임죄 양형이 문제입니다. 특히 살인죄는 모든 범죄 양형의 암묵적 기준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살인죄 피고인들의) 반성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범죄자들조차 사람 한 명을 살해하면 징역 13년 정도를 선고받을 것으로 예측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소하면 무슨 일을 하겠다, 가족들을 위해 너무 오래는…'라는 식의 반성문을 자주 보았습니다.

20·30대 살인범이 징역 13년, 15년을 선고받아도 창창한 30대, 40대에 형기를 마치게 됩니다. 피해자 유족이 '정의가 실현됐다'고 수긍할 수 있을까요? 2010년 4월 형법개정으로 유기징역 상한선이 15년에서 30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형량 분포는 종전의 납작한 삼각형에서 밑변은 그대로지만 꼭짓점은 두 배까지 높아진 삼각형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magic word '다만'

'빨간펜 선생님'(부장판사 지칭)이 되면서 배석의 판결 초고를 고치게 되니, '양형의 이유' 부분이 가장 생각해 볼 부분이 많더군요.

영화 '식스 센스'식 판결은 곤란! 요즘 아무리 가수 싸이가 '반전 있는 여자'를 외쳐대고 '반전 뒤태' 패션이 인기라지만 판결문에까지 반전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예컨대 처음엔)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죄질이 불량하고… 중형이 불가피하다"라고 쓰고선, 그 뒤에 두둥! magic word(마법의 단어) '다만'이 등장합니다.

"다만,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였고 반성하고 있으므로 형의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다."

이는 선고를 끝까지 경청하도록 하는 테크닉(기술)인지는 모르나 '다만' 두 글자만 귀 쫑긋하고 기다리도록 하는 '미괄식(尾括式) 증후군'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구리와 올챙이


선배 부장판사들로부터 많은 '배석 괴담'을 들었는데 그중 가장 처절한 것이 판결(초고) 수정의 고통이었습니다. 배석이 선고 전날 저녁 6시 판결문을 '납품'한 후 사뿐히 퇴근했는데 부장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고치고 또 고치다 포기하고 결국 처음부터 새로 쓰며 날밤을 새우고 말았다는….

그러나 이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오류'입니다.

저도 (배석 시절) 판결문 오기, 오류 등 마감공사 부실 고질병이 있었습니다. 한 달간 선고한 모든 판결의 선고연도를 그 전년도로 잘못 쓴 걸 뒤늦게 발견해 모두 경정 결정(고치는 결정)하는 엽기적 만행을 저지른 적이 있음을 눈물로 고백합니다. (그런) 저도 주제에 부장이 되었다고 (배석들이 쓴) 판결 초고의 오타는 완전 크게 3D로 튀어나와 보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