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한 논설위원

"기내에서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하기 위해 작성하는 신고서의 '방문 목적'란에 '군(軍) 입대'라고 쓸 때 뿌듯했다. 친지 방문이나 관광 목적이 아니라 신성한 국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국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라면 군대는 꼭 가야 한다는 군필자들의 얘기는 '내가 갔다 왔으니 남도 가야 한다'는 보상 심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배우는 '눈치'는 아무리 사회생활을 오래 해도 얻지 못하는 값진 것이었다."

자원입대한 국외(國外) 영주권자 병사들이 병무청이 펴내는 생활 수기집 '대한사람 대한으로'에 쓴 글들이다. 하나같이 입대를 택한 게 자랑스럽고 군 복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는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자원입대한 국외 영주권자의 누적 인원이 지난해 1000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 8월 말 현재 1308명에 달했다고 한다. 2004년 38명에 불과했던 자원입대 국외 영주권자는 2007년 127명, 2011년 221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벌써 243명이 입영을 신청했다. 2004년 도입된 국외 영주권자 입영 희망원 제도는 국외 영주권자가 입대하면 영주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매년 한 차례 영주권 국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항공료 등 비용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원입대한 국외 영주권자의 출신 국가는 미국·캐나다·뉴질랜드·브라질·남아공·필리핀 등 57개국이다.

자원입대 국외 영주권자 가운데는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온 20대가 가장 많지만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입대한 30대 미국 영주권자도 있고, 미 해병대에서 7년간 복무하고 다시 한국 군대를 찾은 이도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자 시력 교정 수술까지 받고 현역 입대한 경우도 있고,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간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와 귀가(歸家) 조치되자 즉각 재입영을 신청해 두 달 뒤 입대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외국으로 이주해 영주권을 얻은 재외동포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강제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일단 모국(母國)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기로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병역법에는 해외 영주권을 얻은 남성은 만 37세가 되는 해 12월까지 입대를 연기할 수 있고, 그 이상 나이가 되면 군 복무를 면제받게 돼 있다. 현재 국외 이주자는 영주권자, 시민권자, 장기 체류 자격 취득자를 합쳐 11만명 정도이다. 자원입대자 숫자는 이 중 1%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지만 군에 안 가도 되는 많은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선택한 것은 대견한 일이다.

이들이 밝히는 입대 이유는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취업하거나 활동하는 데 필요하다는 현실적 판단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 복무를 통해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고 대한민국 국민의 당당한 일원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의 선택은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이 중에는 우리 말이 서툰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모범 병사'가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전우(戰友)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칠 무렵에는 한국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나라이며 한국인으로 살아갈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한다. '초코파이' 한 개의 양보에서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는 병사도 있다.

군에 입대하는 날은 흔히 대한민국 남자로 등록하는 날이라고 한다. 군 복무 기간을 조국(祖國)을 위해 마땅히 봉사해야 할 즐거운 시간으로 여기는 국외 영주권자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