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엊그제 제인 구달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내 안부를 물었다. 올해 85세인데도 매년 거의 100국을 순방하며 자연보호 메시지를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는 세계적 환경 운동가의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매사에 긍정적인 선생님은 이 불행한 사건이 어쩌면 역설적으로 야생 동식물에 관한 우리 인식을 바꿔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얘기한다.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야생 동식물의 날(World Wildlife Day)'이다. 197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사이테스'라고 부름)'을 조인하며 제정한 기념일이다. 지금까지는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날을 기념했지만 이제부터는 순전히 우리 인간을 위해서라도 그 취지를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멧고기(bushmeat·원숭이, 박쥐 등 야생동물 고기)'를 요리해 파는 음식점이 성행한다. 멧고기는 원래 원주민들이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사냥해 먹던 것인데, 언제부턴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전문 음식점이 생겨났다. 이제는 아예 파리나 런던 같은 유럽 대도시에서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그런 곳에 고기를 납품하기 위해 오지의 원주민들이 숲을 들쑤시는 바람에 생면부지 바이러스들이 졸지에 인간 세계로 불려 나오고 있다.

우리가 사육한 고기보다 멧고기 맛이 더 좋을 리는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소, 돼지, 닭 등을 사육하며 육질을 향상시킨 것은 물론, 위험한 기생충과 병원체를 제거해 비교적 안전한 먹거리로 만들었다. 가끔 야생동물 포획 현장에서 그들의 목을 따고 피를 들이켜는 사람들도 있는데, 걸쭉한 병원체 칵테일을 입 안에 털어 넣는 그들의 객기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다.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는 일이 우리를 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