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벌(bumblebee)이 식량인 꽃가루가 부족하면 식물의 잎을 물어뜯어 꽃을 더 일찍 피우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연구진은 “벌이 의도적으로 잎에 상처를 내 개화(開花) 시기를 최대 한 달까지 앞당기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2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꽃가루는 호박벌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겨울잠에서 일찍 깬 벌들은 먹이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연구진은 벌들이 꽃가루가 부족할 때 꽃이 피지 않은 식물의 잎에 구멍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다만 벌들은 잎을 먹거나 벌집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잎에 5~10개 구멍 내자 한 달 일찍 꽃 피워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개화하지 않은 식물에 벌을 풀어두고 관찰했다. 꽃가루를 사흘 동안 먹지 못한 벌들을 잎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결과 꽃가루가 부족한 벌에 의해 잎에 5~10개의 구멍이 난 토마토는 손상되지 않은 토마토보다 평균 30일 일찍 꽃을 피웠다. 개화 시기는 식물의 종에 따라 달랐는데, 흑겨자의 경우는 16일 일찍 꽃을 피웠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꽃가루를 먹지 못한 벌은 먹이를 먹은 벌보다 식물의 잎에 4배 정도 구멍을 뚫는 것도 확인됐다. 이른 봄 실험실 밖 건물 옥상에서도 벌이 꽃가루가 부족할 때 잎에 구멍을 내는 현상이 그대로 발견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봄기운이 만연하고 꽃가루를 많이 구할 수 있게 되자 구멍은 줄어들었다.
◇사람이 구멍 내도 벌만큼 효과 없어
식물은 질병이나 가뭄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개화 속도를 높인다. 생존을 위해서다. 이에 연구진은 잎이 손상되는 것만으로도 꽃을 더 일찍 피우는지 실험했다.
연구진은 면도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식물에 구멍을 뚫었다. 상처가 나지 않은 식물보다는 조금 일찍 개화했지만, 벌이 구멍을 냈을 때만큼 효과가 있지 않았다. 연구진은 “벌에게는 꽃을 피우는 것을 촉진하는 화학물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라르스 치트카 영국 런던 퀸메리대 생물학자는 논평 논문에서 “벌들의 행동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개화를 한 달이나 앞당기는 원리를 알아내는 건 원예가의 꿈”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