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사는 산호가 파란색과 붉은색의 형광(螢光)으로 빛난다. 짝을 찾으러 자신을 뽐내는 유혹의 빛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어가는 산호가 생존을 위해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는 현장이다.
영국 사우샘프턴대의 요르그 비덴만 교수 연구진은 지난 21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산호가 평소 색과 달리 분홍색과 붉은색, 파란색의 빛을 내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공생(共生)하는 미세 조류를 다시 불러오기 위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염료로 과도한 빛 막아 공생조류 다시 불러 산호는 가지가 나있는 모양이 나무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해파리나 히드라와 같은 자포동물문(門)에 속하는 동물이다. 산호는 촉수를 가진 산호충의 군집이다. 산호의 색은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미생물인 조류(藻類)에 의해 결정된다. 조류는 광합성을 해서 얻은 산소와 영양분을 산호충에게 공급하고, 산호충은 조류에게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 적당한 서식 장소를 제공한다.
건강한 산호는 황록공생조류로 인해 갈색을 띠지만 조류가 없으면 햇빛이 석회 성분의 골격 안쪽까지 들어와 반사되면서 하얗게 보인다. 이른바 ‘산호 백화(coral bleaching)’ 현상이다. 하얗게 변한 산호는 침식작용으로 곧 부서져 버린다.
사우샘프턴대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수온을 올리며 스트레스를 주자 2~3주 안에 산호 골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급증했다. 그러자 산호의 몸에 있는 유전자가 새로운 염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이 염료로 붉은색이나 파란색을 반사해 내부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형광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덴만 교수는 “산호는 스스로 이처럼 천억색 염료라는 햇빛 차단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산호의 형광은 생존 기술의 토대가 된다”고 말했다. 공생조류가 다시 살 수 있도록 염료로 빛이 너무 강하지 않게 내부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다만 형광은 어디까지나 환경 스트레스가 그리 심하지 않을 때만 작동했다. 어쩌면 산호가 보이는 형광은 생존의 마지노선에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바다의 열대우림 산호, 30년 만에 절반 사라져
산호는 바다의 열대우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양생물의 보고이다. 산호에 사는 생물은 바다 생물종 3분의 1을 차지하며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5억명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산호가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 전 세계 산호의 절반이 지난 30년 사이 사라졌다. 특히 2015~2017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산호의 몰락은 미세 조류와의 공생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수온이 여름 최고 온도보다 섭씨 1도만 올라가도 공생조류가 산호를 빠져나간다.
2017년 호주 정부 조사단의 연구 결과, 호주 대산호초의 91%가 백화현상을 겪고 있었다. 과거 대산호초의 40% 정도가 백화현상을 보였는데, 수온 상승을 부르는 엘니뇨가 이어지면서 2016년 30%, 2017년 20%가 추가로 백화현상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큰 산호초의 75%가 백화현상으로 죽었고, 동남아에서도 95%가 위험에 처했다. 몰디브도 60% 이상이 피해를 보았고, 카리브 해에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10% 미만이라는 보고도 있다. 2100년이면 모든 산호초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다행히 최근 백화현상을 겪은 호주 대산호초의 일부 지역에서 산호가 여러 형광을 보였다는 보고들이 나왔다. 연구진은 세계 최대의 산호 생태계에서 최소한 일부 산호들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반겼다. 하지만 연구진은 어디까지나 전 세계에 걸친 온실가스 감소와 수질 개선만이 21세기 이후에도 산호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