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공화국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216쪽|1만6000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는 이때 강준만(69)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이 책은 국민 불신을 초래한 사법부를 작심하고 비판한다. 그는 한 언론학자의 칼럼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사법부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고, 대법원이 검찰과 함께 경찰보다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사법 개혁은 없다.”

늑장 재판과 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 강준만 교수가 분석한 사법부 신뢰도 추락의 대표적인 이유다. 그중 재판 결과 불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판사의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성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의심이 강하다. 판사들은 언행을 조심해야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파벌주의가 극심한 나라라 공적 영역에서 사조직을 호환마마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선 동문회·향우회 등과 같은 사조직·사모임을 묵계의 관행으로 억제하거나 눈총을 준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조직 문제가 늘 뜨거운 논란이 되는데도 그걸 굳세게 보호하려는 사법부의 생각 또는 고집이다.”
우리법연구회,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논란의 중심에 선 법원 내 대표적인 사조직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두 모임을 두고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평하지만, 저자는 “법조계 내부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예상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혹시 그 판사 인권법이냐’부터 묻는 사람들이 갖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런 느낌에 대해 ‘재판관 개인 성향’을 따지는 건 부당하다는 반론은 무책임하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이 당신의 겉모습을 보지만 당신의 본질을 인지하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해나 아렌트도 ‘그 어떤 분야보다도 정치에서는 실재와 겉모습을 구별할 길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재판관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 공정하며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나 느낌을 주어야 한다.”
저자는 또 “판사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걸 온라인 활동을 통해 마구 드러내는 게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 문형배처럼 그게 용인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판사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논란이 되자 2012년 대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했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고, 헌법재판관에게는 별도 규정이 없다. 이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특정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조직임에도 용인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민간 영역인 대기업에서조차 금기시되는 일이 왜 사법부에선 가능할까? 혹 자신의 공정성을 과시하는 법조 특권주의 때문은 아닐까? 사법고시 합격 이후 이 사회가 부여하는 온갖 특이 체질 말이다.”
2017년 한 일간지가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91%가 한국은 ‘유전무죄·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라 답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전관예우 실태 조사 및 근절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법조 관련 종사자 중 ‘전관예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5.1%였다. 판사는 응답자 중 23.2%, 검사는 42.9%, 변호사는 75.8%가 인정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민관 합동으로 만든 법조 공화국’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고소·고발과 ‘정치의 사법화’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왕성하게 일어난다. “법을 믿을 수 없으니 두려워하고, 법에 대한 사랑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법을 다룰 수 있는 면허는 권력과 부를 동시에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법조인 비율은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기에 지나치게 높다. 대체로 전체 국회의원의 15~20%를 차지해 왔다. 왜 법조인이 정치판을 휩쓰는 걸까? 저자는 “정치 진입·탈퇴 시 법조인이 누릴 수 있는 호구지책의 비교 우위가 여러 이유 중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법조 출신 정치인은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낙선해도 언제든 변호사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다른 전문 직종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저자는 “법조인들은 고시 공부에 청춘을 바치느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해 낮은 곳에 대해 무지하며, 합리적인 것 같지만 위계를 중시해 ‘위’에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졌다”고 평한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대통령도, 야당 대표를 포함한 유력 대선 주자들도 법조인 출신이 휩쓸고 있는 기이한 정치 구도에서 경계의 말로 삼아봄 직하다.
최신 통계가 부족하고 인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아쉽지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려 애쓴다는 점이 책의 미덕. 윤석열 대통령을 “공적 마인드가 전혀 없는 부인을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우상을 기쁘게 해주는 걸 국정 운영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 온 사람”이라 평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전관예우를 맹비난해 놓고 정작 자기 재판 때는 전관 중심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언행 불일치를 꼬집는다. 좌우를 막론하고 비판을 아끼지 않아 온 지식인의 고언으로 읽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