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가 관객 수 50만명을 넘겼다. ‘바디 호러’ 장르로는 놀라운 흥행 성적이다. 주연 배우 데미 무어의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도 화제 몰이를 했지만, 핵심은 ‘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다.
몸은 사회적 시선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전쟁터다.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해 거울 앞에서, 체중계 위에서 좌절한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이 치열하고도 괴로운 각개전투가 이야기로 쏟아져 나오고, 소비된다. ‘지금 문학은’ 특집은 최근 출간작 중 몸을 비중 있게 다룬 소설 세 편을 추렸다.
◇젊음을 향한 기형적 욕망
호르몬 체인지
최정화 소설 | 224쪽 | 은행나무 | 1만6800원
최정화의 ‘호르몬 체인지’는 노골적이다. 타인의 호르몬을 주입받아 생체 나이를 젊게 되돌리는 수술이 가능해진 세상이 배경. ‘수술 후 내내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마냥 기쁨에 젖은 채 한동안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중략) 피부는 맑고 싱그러웠으며 붉은 입술은 잔주름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노인들은 어두운 골목으로 숨는다. ‘젊고 건강한 몸’을 향한 욕망의 경제를 기형적으로 증폭시켜 보여준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별다를 게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르몬 수술을 받고 스무 살이 된 70대 노인 바이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호르몬을 제공하는 셀러, 수요를 맞추기 위해 윤리 의식을 저버리는 의료인 등. 다양한 화자의 입을 빌려 디스토피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으면서까지 젊어지려는 이 비틀린 욕망은 무엇으로부터 추동되었는가, 작가는 묻는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몸
3월의 마치
정한아 장편소설 | 288쪽 | 문학동네 | 1만6800원
정한아의 ‘3월의 마치’는 예순을 맞은 여배우 이마치가 체중계 위에 올라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마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그녀의 몸무게는 55킬로그램이었다. (중략) 이마치는 아침마다 몸무게를 잰 다음 밥을 먹을지 굶을지 정했다.’
예순이 된 생일날 아침. 체중계는 59kg를 가리킨다. 잦은 기억력 감퇴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그녀는 ‘알츠하이머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는다. 대사를 기억하지 못해 배역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물밀듯 밀려오는 신체의 노화 신호를 감당하지 못해 휘청거린다.
이마치는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VR 치료를 받는다. ‘60층 아파트’에 놓인 그녀는 꼭대기 층에서 아래로 한층 한층 걸어 내려가며 돌보지 않은 과거의 삶을 되짚는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고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몸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혼모노
성해나 소설집 | 368쪽 | 창비 | 1만6800원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에서는 단편 ‘잉태기’가 눈에 띈다. 화자인 ‘나’는 출산을 앞둔 딸 서진을 위해 해외 원정 출산 계획을 짠다. 목적지는 괌. 자식을 ‘양키 만들 셈’이냐며 한사코 반대한 시부 때문에 원정 출산을 가지 못했던 한을 풀기 위해서다. ‘내가 깔아둔 매끈하고 부드러운 판에 그 애는 무사히 안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연스럽고 기껍게.’
이번에도 시부가 들고일어난다. ‘한국에 국제학교도 널렸는데 왜 굳이 외국까지 가서 범법자가 되려느냐’는 것. 나는 서진을 가졌을 때 시부에게 휘둘린 일을 떠올린다. 이름마저 마음대로 지으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딸과 손주를 시부의 손아귀에 두고 싶지 않다.
소설 막바지엔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다. 공항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실랑이를 보며 독자는 묻게 된다. 그런데 서진이 원하는 건 대체 뭘까. 그러다 역으로 깨닫는다. 내 몸에 왈가왈부한 사람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는 과연 내 몸의 진정한 주인이었나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