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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사태 속에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었던 국민의힘에서도 대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곧 주요 주자들이 모두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 대선 주자들은 경력과 능력에서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에 비해 모자란 것이 없지만 국힘 내부는 패배 의식이 깔려 있는 무거운 분위기다. 계엄이 이재명 전 대표에게 큰길을 열어줘 버린 상황에서 해 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는 좌절감이다.

그러나 국힘 입장에서도 포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 전 대표의 득표 기반이 제한적이다. 이 전 대표 한 사람에 대한 비호감도는 여론조사마다 늘 60%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우엔 득표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적극 지지한다’가 26%였는데,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가 41%로 나타났다. 다른 조사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는 61%였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대선에서 50% 이상 득표한 사람은 한 명(박근혜·51.5%)뿐이었다. 이 전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47.8%를 얻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가 단시간에 바뀌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이 전 대표는 47~51%가 득표 한계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번 대선이 국힘 후보 대 이 전 대표의 양자 대결로 치러지면 국힘 후보가 윤 전 대통령처럼 0.7% 정도로 근소하게나마 승리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국힘 내부 경선이 큰 잡음 없이 마무리되고 당선된 후보를 다른 주자들이 성심껏 도와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이는 거의 없었던 일이다. 특히 국힘에서 그랬다. 만약 국힘이 이 허들을 넘는다면 대선 승부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하게 바뀔 것이다.

국힘 내부 경선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외부 세력이 개입해 ‘계엄과 탄핵’이라는 과거가 다시 이슈화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은 거의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국힘은 보수층만의 표로는 이길 수 없고 최대한 중도층 표를 끌어와야 하는데, ‘계엄과 탄핵’을 다시 등장시키면 중도층의 혐오만 사게 된다. 탄핵 이후 앞으로 윤 전 대통령이나 외부 세력이 어떻게 나올지는 차츰 드러나겠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국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국힘 정치인 한 사람은 탄핵 후 “지금 당내에서 일부 의원이 윤이 지목한 사람이 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수 측 후보의 단일화도 필요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의 통합이 결국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와 국힘 후보, 이준석 후보와의 3자 대결 때 이준석 지지율은 9%였다. 실제 대선에서 9% 아닌 2~3%라고 해도 승부를 가를 수도 있는 수치다.

국힘의 선거 전략도 중요하다. 국힘 후보가 자기 색깔 없이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이라는 ‘이재명 함정’에 빠지면 결국 이 전 대표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유권자들은 ‘윤 대 이’의 무한 정쟁에 지쳐 있다. 국힘 후보가 그 윤·이 정쟁 시즌 2를 만들면 이 전 대표가 좋아할 것이다. 이 전 대표에게 가장 좋은 선거 구도가 ‘윤석열 대(對) 반윤석열’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이재명 함정’이다.

2007년 ‘이명박 대 정동영’ 대선이 지금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선거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론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치러졌다. ‘노무현에 반대되는 것은 뭐든 좋다’는 정도였다. 진보 측 정 후보는 노무현과 차별화를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선거에 임해야 했다.

정 후보는 결국 이명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집중했다. 정 후보 측 선거 전략은 BBK 의혹으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났다. 국회를 방문한 이 후보에게 민주당 당직자가 침을 뱉는 극단 행동까지 할 정도였다. 선거 결과는 이명박 후보가 531만표(22.5%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 대선 역사상 최대의 표 차였다.

이번 대선에서 국힘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해 요지부동인 국민적 비호감도이다. 반면 국힘에 가장 힘든 부분은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보다 압도적(20%포인트 정도)으로 높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대선은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변동의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힘엔 바늘구멍이고, 이 전 대표에겐 넓은 문이다.

국힘이 최선을 다하고 운까지 따른다면 50만표 안팎으로 극적 승리를 할 수 있지만, 그 조건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500만표 차이와 같은 역사적 대패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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