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작년 12월 시신 임시 보관용 영현백 3000여개를 준비했다고 주장한 얼마전 MBC 보도는 추미애 의원실이 제공한 이른바 ‘군별 영현백 보유량’ 자료 외에 별다른 근거가 없다. 두 사건의 시기가 겹친다는 것만으로 “군이 비상계엄을 앞두고 대규모 인명 피해 발생에 대비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의원실의 제보를 믿고, 더 설득력 있는 “합참 지침에 따른 정기적인 군수물품 확보”라는 해명은 리포트 맨 뒤에 붙여 기각하다시피 했다. 인과(因果) 관계 형성에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의 허위정보다. 코로나 창궐 때 ‘시기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영국서 한창 보급 중이던 5G 휴대폰 통신 기지국을 사람들이 파괴했다는 외신을 떠올리게 한다.

/MBC 방송 화면 캡처
/MBC 방송 화면 캡처

지난 1월 안규백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용산을 빠져나와 제 3의 장소에 도피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확인해 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잡범도 이런 잡범이 없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그는 대통령 소재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지위였지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도 ‘안규백, 윤 도피설 제기’라는 수십건 허위정보 기사와 함께 검색된다. 확인을 하지 않았기에 기사가 되는 역설. 이른바 ‘선관위 연수원 중국인 99명 체포설’도 캡틴 아메리카 옷을 입고 다니는 제보자 말만 믿고 나머지 확인을 하지 않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보가 넘쳐난다. 제보만 있으면, 확인도 않고 떠들어도 되는 일종의 면허를 가진 것처럼 군다. 김어준이 비상계엄 직후 국회서 폭로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사살 계획’도 제보가 출처였다. 김어준은 이날 허위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과거엔 ‘합리적 의심’이라면서 최소한의 논리적 얼개라도 갖추려 노력하더니, 요즘은 그런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요즘 “암살 위협 제보가 있다”면서 방탄조끼를 입고 다닌다. 정상이라면, 어떤 세력이 야당 대표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는지 은밀하게 수사를 해야 할텐데, 무슨 자랑거리인양 주변 국회의원들까지 너도나도 “나도 제보 받았다” 떠들어댄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설익은 제보와 불완전한 진실이 뉴스라고 아우성치는 형국이다.

지난달 15일 연합뉴스 인터넷판에 작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무속인 “최순실, 장관 인사도 내게 물어…대답 안했다”’ 관련 정정보도문이었다. 2016년 탄핵 정국에 이뤄진 불완전 보도에 대한 정정이었다. 언론은 이렇게 뒤늦게라도 정정을 한다. 하지만, 지금 확인도 안된 제보를 전파하는 수많은 이들 중 사실이 아닐 경우 바로잡을 이가 얼마나 될까. 온갖 재앙과 화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 버린 희망처럼, 사실이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힘겨워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제보로 포장된 온갖 허위정보가 판치는 이 세상을 우리가 헤쳐 나갈 방법은 ‘사실’을 추구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신동흔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