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우리마을에서 발달장애인 대상 명상 프로그램에서 강사인 김재성 교수가 싱잉볼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회에 걸쳐 진행된 명상 프로그램에 대해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다. /고운호 기자
인천 강화군 우리마을에서 발달장애인 대상 명상 프로그램에서 강사인 김재성 교수가 싱잉볼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회에 걸쳐 진행된 명상 프로그램에 대해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다. /고운호 기자

◇ “모두가 행복하기를”

“빨간 차(車)다!”

지난달 26일 오후 2시 직전. 인천 강화 길상면의 발달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 ‘우리 마을’.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아 있던 8명 가운데 누군가 창밖을 내다보다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를 보며 외쳤다. ‘빨간 차’는 매주 수요일 명상을 지도하는 김재성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자동차. 이들은 그만큼 명상 시간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오후 2시 시작된 명상 시간. 김 교수는 참가자들을 매트에 눕게 한 후 “행복한 명상을 해볼까요?”라며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소리 듣기 명상으로 이날 교육을 시작했다. 이어진 자애 명상. 참가자들은 김 교수를 따라 “나는 소중하고 최고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정말로 행복하기를”이라고 되뇌었다.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대상은 ‘나’에 이어 ‘우리’ ‘주교님’ ‘엄마’ ‘내 가족’ ‘선생님들’ ‘친구들’ ‘사람들’ ‘동물들’ ‘모두’로 동심원을 넓혀갔다.

30분쯤 지난 후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다시 종소리 명상. 김 교수가 싱잉볼을 7차례 울린 후 “몇 번 울렸지요?”라고 물으니 참가자들은 저마다 “1번” “11번”까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누군가 “여러 번!”이라고 외치자 김 교수가 답했다. “정답!”

다시 자애 명상에 이어 호흡 알아차리기, 먹기 명상으로 넘어갔다. 김 교수는 견과류 봉지를 나눠주고 씹으며 아몬드, 호두, 건포도 등의 냄새와 질감, 맛 등을 알아차렸는지 점검했다. 마지막 순서는 선 채로 하는 ‘산(山) 명상’. 김 교수는 “내 몸이 산이라고 생각하자. 머리는 꼭대기이고. 구름, 비바람, 눈보라가 지나가면서 산이 안 보일 때도 있지만 산은 항상 그대로 있지요?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고 화, 욕심도 일어나지만 내 마음은 이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명상 수업은 1시간 내내 웃음 속에 진행됐다.

강화 '우리마을' 발달장애인 명상 교육을 위해 모인 관계자들. 오른쪽부터 조성택 이사장, 정병은 박사, 김성수 주교, 김재성 교수, 원순철 당시 우리마을 원장 신부. /우리마을 제공

◇“그거 안 될 걸요” “어, 되네!”

이날은 우리마을에서 진행된 12번째 명상 수업. 처음엔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해보자”라며 기대 속에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의미 있는 실험 현장이 됐다.

우리마을 발달장애인 명상 교육은 ‘촌장(村長)’인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의 바람에서 비롯됐다. 김 주교는 유산으로 받은 고향 강화 땅을 기증해 발달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한 장본인. 그의 소원은 발달장애인이 조금이라도 상태가 호전되는 것. 김 주교의 지론은 “발달장애인은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좋은 것이 있으면 자꾸 시켜 줘봐야 한다”는 것. 그는 “명상에 사회적 관심이 높다는 건 뭔가 좋은 점이 있기 때문 아니겠나.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에게도 좋은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명상을 가르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김 주교의 이런 바람에 화답한 것은 사단법인 마인드랩 조성택 이사장. 불교학자인 조 이사장은 고려대 철학과 정년 퇴임 후 종교와 인문학적 지식, 영성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방법을 연구하는 기구로 마인드랩을 설립했다. 지난해엔 ‘종교문해력 총서’를 펴내기도 했다. 조 이사장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며 ‘연합군’을 꾸리고 프로그램 진행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명상 교육은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김재성 교수, 명상 교육 이후의 변화에 대한 사회학적 비교 분석은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정병은 박사와 조경진 고려사이버대 교수가 맡기로 했다. 정 박사와 조 교수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조 이사장과 김 교수, 정 박사 등은 지난해 9월 우리마을을 방문해 발달장애인들을 만나 참가 자원자를 모집했고, 9명이 10월 23일 첫 명상을 진행했다. 이후 12월 말까지 10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1시간씩 명상 수업이 시범 운영됐다. 연초 휴식 후 2월 19일 1년간 정식 수업 재개를 앞두고 참가자들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결과는 9명 중 8명이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마을 이정은 사무국장은 “처음 시범 운영 당시 ‘우리 친구들이 1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뜻밖에 너무 좋아하고 거의 전원이 계속하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마을에서는 그동안 미술 치료, 음악 치료, ‘난타’ 등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나’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프로그램은 명상이 처음”이라며 “나에 대해 물어주고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좋은 사람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에 호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병은 박사는 처음 프로그램 구상을 듣고 “그거 안 될 거요”라고 회의적이었다. 스스로 발달장애 아들을 키워본 경험에서 우러난 반응이었다. 주변의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반응도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나 10주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참가자·담당 직원들과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정 박사는 “그동안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집중하는 것’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행 과정을 보면서 발달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효과가 있을 수 있도록 오랜 기간 동안 명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특히 한 참가자가 귀가 후 보인 반응에 고무됐다. 그는 “오늘 명상했다”고 말했고 ‘명상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 “엄마가 행복하기를”이라며 자애 명상 구절을 읊조렸다는 것. 그동안 ‘우리마을’ 발달장애인이 프로그램 참가 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정 박사는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3월 말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조성택 이사장은 “처음 김성수 주교님의 제안을 듣고 발달장애인 명상 교육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재정이 확충된다면 장기적·지속적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찾는 사람들’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