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CU는 택배를 접수하면 다음 날 원하는 곳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14일 밝혔다. 자체 물류망을 활용한 택배와 해외 특송 등에 더해 택배 발송부터 수령까지 24시간 안에 초고속 배송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편의점 업체까지 앞다퉈 택배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경쟁이 심해진 국내 택배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유통·물류 업체들이 늘고 있다. ‘더 빨리’ ‘더 싸게’를 외치는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택배 서비스를 계속 강화하는데, 시장 성장 속도는 둔화하고 수익성은 뒷받침되지 않는 부작용을 맞닥뜨린 것이다. 새벽 배송 업계 1위라고 선전한 업체는 서비스를 중단했고, 쉬는 날 없이 주 7일 배송을 추진하는 택배 회사는 노조의 반발에 직면했다. 업계 관계자는 “배송 속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를 만든 쿠팡을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업체들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며 “택배사들이 이커머스 업체에 부과하는 비용을 인상하고 결국 소비자가 인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 할 순 없는데 쉽지 않다
B2B(기업 간 거래) 새벽 배송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했던 물류 회사 팀프레시는 지난달 31일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했다. 창업 첫해인 2018년 27억원의 매출을 올린 후 지난해에는 6년 만에 200배가 넘는 5444억원의 매출을 거둔 회사다. 누적 투자 유치액이 2000억원이 넘었는데, 계획했던 투자금 납입이 지연되자 서비스를 중단했다.
자체 배송망을 갖추기 어려운 대부분의 유통 업체는 더 빠른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 있는 배송 업체를 찾아 나선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 사업을 하는 물류 업체들은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고객사 유치를 위해 더 빠른 배송, 쉬지 않는 배송을 앞다퉈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택배 업체 입장에서 ‘휴일 배송’ ‘새벽 배송’ 등을 안 할 수는 없는데, 막상 하려니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는 게 문제다. 통상 새벽 배송, 휴일 배송 등은 택배 업체가 배송 기사에게 20~30%의 수수료를 추가 지급한다. 택배 시장이 계속 커진다면 새벽 배송, 휴일 배송 등을 확대해 더 많은 고객사를 유치하고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택배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1~2월 국내 택배 물동량(쿠팡 제외)은 5억8000만 상자로 추정된다. 작년 같은 기간(6억416만 상자)과 비교하면 4% 줄어든 양이다. 택배 물량의 ‘큰손’인 이커머스 거래액도 성장세가 주춤하다.
CJ대한통운은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지 32년 만인 지난 1월 주 7일 배송을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도 주 7일 배송을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노조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9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한진택배가 주 7일 배송을 강제 시행하려 한다”며 “노조와 협의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출혈 경쟁, 가격 인상 불가피
고객사 유치를 위해 새벽 배송, 휴일 배송을 도입한 택배사는 배송하는 물량이 눈에 띄게 늘지 않으면 비용 증가로 오히려 손해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올라간 상황에서 다시 배송에 2~3일 이상이 걸리고, 휴일에는 배송이 되지 않는 시대로 돌아갈 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기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해 출혈 경쟁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실제 CJ대한통운은 지난 1일부터 온라인 쇼핑몰과 편의점 등 기업 고객에 대한 택배비를 최대 100원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택배 사업자들의 실적 부진을 전망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11일 CJ대한통운의 목표 주가를 기존 13만원에서 11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래에셋증권 류제현 연구원은 “CJ대한통운의 택배 부문은 이커머스 시황 부진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역성장이 전망된다”고 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영향력 있는 업체들은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강화하면서 버틸 수 있지만, 작은 업체들은 고객사 유치를 위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소비 위축이 계속될 경우 위기에 빠지는 배송 업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