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마티스는 고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류마(rheuma)’는 고대 그리스어로 ‘나쁜 기운이 흐르다’라는 의미다. 좋지 않은 체액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인체를 공격하고 통증을 유발한다는 의미다. 이는 현대 의학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류마티스는 면역 세포가 피아(彼我) 구분을 하는 능력을 잃고,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적군을 막는 군대가 오히려 아군을 공격하는 셈이다. 류마티스가 관절에서 나타나면 류마티스 관절염, 타액선·눈물샘 등에서 나타나면 쇼그렌증후군, 피부에서 나타나면 피부근육염 등으로 불린다.
김완욱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지난 25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류마티스 환자가 국내에서 빠르게 늘고 있고, 최근에는 20대 환자들도 병원을 많이 찾고 있다”며 “다행히 표적치료제가 20여종 출시되면서 난치병이었던 류마티스도 이제는 증상이 사라지는 ‘완전 관해’가 가능한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완욱 교수는 26년차 류마티스내과 전문가로 국내에서 최고 명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2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내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가톨릭대 의대 교수로 현재까지 2000여명의 환자를 돌봐왔다. 그는 환자 치료뿐 아니라 류마티스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연구하는 의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리더연구에 두 차례 연속 선정돼 20년간 연구비 180억원을 지원받을 정도로 연구자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류마티스의 원인은 다양하다.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 모두 류마티스를 유발한다. 특히 노화가 대표적인 만큼 최근 국내 류마티스 환자 수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류마티스 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수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4만4768명에서 25만4778명으로 4.1% 늘었다. 진료비도 같은 기간 2936억원에서 3348억원으로 14.1% 늘었다. 고가(高價)의 표적 치료제들이 늘어난 탓이다.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감염 질환도 류마티스를 유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 면역 세포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인체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세포도 함께 활성화된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류마티스의 발병 확률이 25%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 교수는 최근 류마티스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면역계 질환 증가와 함께 검사 기술의 발전을 꼽았다. 그는 “최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자가면역질환을 발견할 수 있는 검사법이 많이 도입됐다”며 “혈액검사로 간단하게 자가면역을 일으키는 자가항체 보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류마티스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발병 가능성을 살펴볼 수도 있게 됐다. 통상적으로 자가항체가 발견된 후 3~4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난다. 류마티스에도 일종의 잠복기가 있는 셈이다. 이 시기에 세균(박테리아)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다른 이유로 면역이 활성화되면 류마티스가 발병한다.
김 교수는 “자가항체가 있는 상태에서는 면역증강 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식품만 먹더라도 류마티스 발병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며 “이 시기에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류마티스 환자의 예후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류마티스에도 예방 중심의 관리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증상이 나타난 뒤 치료하기보다는 자가항체가 발견된 환자를 관리하면 완전 관해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 관해는 완치와 다른 개념이다. 완치는 증상이 모두 사라져 더 이상 약이나 치료가 필요 없는 상태라면, 완전 관해는 적절한 치료나 약으로 증상이 계속 나타나지 않게 건강을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에이즈 환자라도 약만 먹으면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대부분 사람은 태생적으로 소량의 자가면역 세포를 갖고 있는 만큼 아무리 의료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며 “다만 선제적인 예방 조치로 완전 관해율을 35%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예방적 관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출시되고 있는 표적치료제의 효능 덕분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류마티스 치료는 여러 종류의 항류마티스제를 섞어 쓰는 칵테일 요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칵테일 요법은 여러 면역 시스템을 동시에 조절하는 만큼 치료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부작용은 크다는 한계가 있다. 류마티스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의심되는 모든 면역 시스템을 억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몰라 넓은 지역을 융단 폭격한 셈이다.
2010년대를 기점으로 적만 골라 공격하는 유도미사일 같은 표적치료제가 개발됐다. 여기에 진단 기술까지 발달하면서 환자마다 다른 류마티스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표적치료제는 완전 관해율이 최대 90%에 달할 정도로 효과가 뛰어나 류마티스 치료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며 “표적치료제 종류도 20여 종이나 돼 환자 대부분에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증상이 발현되고 6개월까지는 칵테일 요법을 표준 치료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표적치료제의 비싼 가격 때문이다. 국내에서 표적치료제 한 달 치 가격은 100만원에 달한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초기 환자에게 사용하기는 부담이 크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류마티스 진단 3개월 내로 표적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치료 시기가 빠를수록 완전 관해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검진에서 자가항체가 발견된 이후부터 표적치료를 하면 환자의 예후를 더 좋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적군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섬멸하는 식이다. 그는 “해외에서는 이미 예방적 관리에 표적치료제의 효과가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하고 있는 연구가 류마티스의 예방적 관리 도입을 앞당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류마티스 표적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표적을 찾고 있다. 환자마다 다른 류마티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아무래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전국에서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을 많이 본다”며 “그런 환자들에게 방법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환자에게 맞는 표적치료제를 선택하는 가이드라인도 만들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른 시기부터 효과적인 류마티스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AI를 이용한 표적치료제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면 환자마다 예방적 관리, 맞춤형 의료를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