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해외 송금 업무를 위해 은행을 찾은 70대 노인이 2시간 동안 돈을 부치지 못하고 헤매다 쓰러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들은 은행원의 지시에 따라 무리하게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려다 빚어진 일이라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2일(현지 시각) 미국에 본사를 둔 중화권 매체 대기원(大紀元)에 따르면 리모씨는 지난 12일 중국 난징의 한 중국은행 지점을 상대로 난징 친화이 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리씨의 아버지는 74세였던 지난해 10월 22일 오전 9시쯤 해외에 살고 있는 리씨에게 송금을 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이 은행을 방문했다. 리씨 아버지가 뽑은 대기표에 적힌 번호는 1번으로, 대기 인원은 0명이었다.
당시 리씨는 오전 10시 42분쯤 은행에 있는 부모와 영상 통화를 했는데, 이때까지도 아버지는 송금 업무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10분쯤 지난 뒤 리씨의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졌고 이틀 뒤 사망했다. 사인은 외부의 심한 압박으로 인해 뇌가 본래 위치에서 밀려나오는 뇌 탈출이었다.
리씨는 은행 감시카메라(CCTV)를 확인하다 아버지가 처음 몇 분 동안만 은행 창구에서 업무를 본 상황을 확인했다.
CCTV에는 리씨 아버지가 약 2시간 동안 직원의 지시에 따라 로비에 있는 ATM 기기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다시 은행 대기실로 들어가는 모습, 리씨 어머니가 남편을 도와 휴대전화를 조작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리씨 아버지는 직원들을 따라 은행 이곳저곳을 드나들었고, 본인 인증을 위해 휴대전화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여러 차례 찍기도 했다.
그러던 사이 아버지는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떨기 시작했고 삐뚤어진 입에서 침을 흘렸다. 계속해서 하품을 하기도 했다.
오전 10시 49분쯤 은행 직원은 리씨 아버지에게 물이 필요한지 물었다. 이후 약 4분 뒤 리씨 아버지는 탁자 위로 쓰러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은행 직원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리씨는 은행의 업무 처리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은행 직원이 아버지에게 모바일 뱅킹을 이용할 것을 강요한 점과 은행에 간 아버지가 로비에서만 40여 분의 시간을 보낸 점을 문제 삼았다.
리씨는 고소장에서 “전문 금융기관으로서 (고객의) 실제 연령과 신체 상태에 따른 적절한 업무 처리 방법을 제공하지 못했다”며 “휴대전화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에서 (고객을) 지도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아 결국 아버지가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다른 지점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해본 결과 창구에서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중국 내에서 인기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네티즌들은 “은행 창구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왜 모바일로 하도록 강요하는가. 노인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약해서 시간 낭비가 심하다” “은행 창구 업무를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고객 한 사람의 권리 보호뿐 아니라 디지털화 시대 속에서 고령 친화적 서비스가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등의 비판을 내놨다.
국내에서도 주요 은행이 수익성 강화와 디지털 전환을 이유로 오프라인 지점 축소하면서 고령층과 금융 취약 계층의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해 11월 열린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한 금융권 공감의 장’ 행사에서 “금융권이 디지털 전환과 비용 절감에 집중하며 물리적 점포 등은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고령자·장애인·비도심 거주자 등 취약한 금융 소비자의 금융 거래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부 은행은 이동식 점포 운영이나 화상 상담 서비스 확대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