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찾은 워싱턴 DC의 미국의 소리(VOA) 건물 앞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7일 찾은 워싱턴 DC의 미국의 소리(VOA) 건물 앞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7일 오후 찾은 미국 워싱턴 DC ‘미국의 소리(VOA)’ 방송 사옥 앞 주차장. 약 100대의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평소 이 건물은 24시간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VOA를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주차할 공간을 찾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VOA에 대한 구조 조정을 지시한 지 사흘만에, 이곳엔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만 보였다. 점심 시간인데도 VOA 인근 맥도널드·스타벅스가 한산했다. 트럼프의 명령에 따라 VOA 직원 약 1300명이 유급휴가에 돌입한 탓이다.

계약직 신분의 VOA 소속 기자와 편집자, 영상 제작자, 엔지니어, 기술자 등 550명은 VOA를 관할하는 미 정부기관 글로벌미디어국(USAGM)으로부터 이메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현지 소식통은 “업무용 이메일과 프로그램 접근 권한이 빠르게 차단됐고, 일부 직원은 출근하던 중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벌써부터 재취업에 나선 VOA 출신들의 이력서가 워싱턴 DC의 주요 기관과 기업에 답지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3억6100만명에 49개 언어로 뉴스를 제공해온 VOA 방송은 15일부터 대부분 중단됐다. 1942년 설립된 지 83년 만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VOA를 통해 독일 나치의 선전 활동에 맞선 뉴스와 정보를 제공했고, 이후에도 전 세계 권위주의 국가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달했다. 특히 VOA 한국어 방송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듣는 주요 통로로도 활용돼왔다. 현재 VOA 방송 채널에는 “VOA가 미국의 정책을 알리고 미국을 대표할 것”이란 내용의 31초짜리 영상이 반복돼 나타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동·아시아 등 일부 국가의 라디오에서는 음악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USAGM이 관할하는 VOA, 자유아시아방송(RFA), 자유유럽방송(RFE) 등이 모두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구조 조정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USAGM 수장인 카리 레이크는 16일 X에 “대통령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기간만큼만 이 늪에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고 통보를 받은 일부 직원은 복직을 위한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RFA 역시 베이 팡 최고경영자(CEO)가 “계속 일을 하고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다.

17일 찾은 워싱턴 DC의 미국의 소리(VOA) 건물 앞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7일 찾은 워싱턴 DC의 미국의 소리(VOA) 건물 앞 글로벌미디어국(USAGM)에 할당된 지정 주차석이 모두 비어있는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VOA 소속으로 백악관에 출입했고, 과거 서울·도쿄에서도 특파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기자 스티브 허먼은 “과거에도 우리 기관이 스파이로 가득 차 있다는 등 여러 의혹이 쏟아졌지만 전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직원들의 소송이 제기되면, 사법부가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먼은 2012~2013년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장을 지냈고, 과거 언론에 “막걸리에 푹 빠졌다”고 밝힌 지한파(知韓派) 인사이기도 하다. VOA는 북한 구금 시설 심층 분석 등의 보도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환기시켜왔다. 허먼은 “이번 주말 모스크바·베이징·평양의 독재자 방에서는 축하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7일 사설에서 “중국에 관한 거의 모든 악의적 거짓말에는 VOA의 지문이 묻어 있다”며 “자유의 횃불이라 불렸던 VOA가 미국 정부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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