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걷고, 자고, 또 먹고… 이런 배부른 여행이 또 있을까요?”

지난달 25일 오전 9시 30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시방선착장. 평일인데도 선글라스를 낀 여행객 40여 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와 낚싯대, 아이스 박스를 들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배 타고 8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이수도.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이수도. 주민 108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1박 3식' 아이디어로 지난해 관광객 13만명을 불러 모았다. 이 섬 민박집에 하룻밤 묵으면 제철 식재료로 만든 세 끼를 맛볼 수 있다. /거제시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이수도. 주민 108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1박 3식' 아이디어로 지난해 관광객 13만명을 불러 모았다. 이 섬 민박집에 하룻밤 묵으면 제철 식재료로 만든 세 끼를 맛볼 수 있다. /거제시

한때 무인도가 될 위기에 처했다가 ‘1박 3식’으로 유명해진 섬이다.

이 섬 민박집에 묵으면 섬 앞바다에서 난 해삼, 멍게 등으로 세 끼 밥을 차려준다. 비용은 1인당 10만원 정도다.

싱싱한 제철 음식을 맛보며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13만명이 찾았다. 마을 주민 수(108명)의 1200배다.

대구에서 왔다는 김채연(42)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수도를 알게 됐다”며 “회랑 해산물을 배불리 먹고 책도 읽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선착장 직원은 “주말에는 여행객이 1000명씩 찾아와 수시로 배를 띄운다”고 했다.

이수도는 38만㎡ 크기의 작은 섬이다. 1시간 30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대구, 멸치 등 해산물이 넘쳐 이수도(利水島·이로운 물의 섬)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후 변화 등으로 어획량이 줄고 주민들이 빠져나가면서 여느 섬처럼 ‘인구 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0년대 500여 명에 이르던 주민은 2000년 들어 50여 명까지 줄었다.

그래픽=이진영

주민들은 2010년 마을을 살리기 위해 폐교를 펜션으로 꾸몄다. 하지만 작은 섬마을 펜션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은 없었다. 그러던 2012년 이수도에서 민박집을 하던 배민자(67)씨가 “손님들에게 제철 음식으로 세 끼를 대접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1박 3식’ 민박 상품이 탄생했다. 배씨는 “여행을 가면 엄마들은 항상 음식 걱정을 하게 된다”며 “남이 밥을 해주면 여행객들은 온전하게 쉴 수 있고 식재료까지 싱싱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후 소문이 나면서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1박 3식을 내놓았다. 마을 78가구 중 16가구가 1박 3식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와 거제시도 힘을 보탰다. 197억원을 들여 전망대와 출렁다리를 만들고 둘레길을 손봤다.

배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아가 보니 상차림이 달랐다. 이수도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도다리회에 낙지 탕탕이, 문어 숙회, 멍게, 굴찜, 양념 장어 구이, 전복 탕수, 백합탕 등 음식 가짓수만 10개가 넘었다.

제철 식재료를 쓰다 보니 철마다 메뉴가 다르다고 한다. 경남 거창에서 왔다는 손순옥(79)씨는 “주인장이 ‘모자라면 더 준다’고 하는데 도저히 더는 못 먹겠다”며 “맛도 좋고 인심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씨가 “방금 해녀가 잡아왔다”며 해삼을 썰어왔다.

지난달 25일 경남 거제 이수도의 한 민박집에서 내온 상차림. 음식 가짓수만 10개가 넘는다. /거제=김준호 기자

경남도는 이수도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올해부터 제2, 제3의 이수도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경남에는 552개 섬이 있는데 해마다 주민 수가 줄어들고 있다.

경남도가 주목하고 있는 섬은 통영시 산양읍의 추도다. 작년 5월 추도에선 2박 3일간 ‘제1회 추도 섬 영화제’가 열렸다. 8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에 전국에서 영화 마니아 240여 명이 찾아왔다. 추도에는 편의점이나 카페도 없다. 관객들은 팝콘 대신 남해안 톳과 미역으로 만든 비빔밥을 손에 들었다. ‘3일의 휴가’란 영화를 상영한 육상효 감독은 “바다와 섬, 영화가 어우러지는데 내가 본 영화제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경남도는 올해 9억원을 들여 추도를 영화의 섬으로 만들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거제 일운면의 지심도는 ‘웨딩섬’으로 탈바꿈한다. 지심도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주민들은 작년 11월 거제에 사는 세 커플을 초대해 ‘리마인드 결혼식’을 열었다. 성공 가능성을 발견한 경남도는 올해는 이런 섬마을 야외 결혼식을 세 차례 열기로 했다. 웨딩드레스와 메이크업, 웨딩 촬영도 무료로 지원한다. 이상훈 경남도 해양수산국장은 “특별한 섬을 계속 만들어 관광객도 유치하고 섬 경제도 살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