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행운’이나 ‘예상치 못한 우연한 발견’을 뜻한다. 이 단어를 처음 만들어 쓴 사람은 18세기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 1754년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바사리 그림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며 페르시아 동화 ‘세렌딥의 세 왕자’를 인용했다. “동화에 나오는 왕자들이 미처 몰랐던 것들을 우연하면서도 지혜롭게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지.”
월폴은 세렌딥(Serendip)에 ‘-ity’를 붙여 ‘세렌디피티’라는 새 단어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 뜻과 어감을 좋아해 널리 사용하게 됐다. 페르시아 동화에 나오는 세렌딥은 실존했던 왕국. 오늘날의 스리랑카다. 과거 페르시아인들과 아랍인들은 인도반도 동남쪽에 있는 이 섬나라를 세렌딥이라고 불렀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스리랑카는 뜻밖의 발견이었다. 홍차 생산국,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향, 몰디브로 신혼여행 갈 때 잠시 들르는 경유지 정도로만 알던 스리랑카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볼거리를 품고 있었다. 세렌디피티 그 자체였다.
◇보석과 향신료로 가득한 보물섬
스리랑카는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이 오래전부터 찾았다. 보석과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인도양의 보석 상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면적 대비 가장 많은 보석 광맥을 보유하고 있다.
아쿠아마린, 알렉산드라이트, 투어멀린, 쿼츠 등 80여 종의 보석이 나오지만 대표는 사파이어다.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사파이어 생산지. 최고(最古)일 뿐 아니라 품질도 최고(最高)로 평가받는다. 맑고 밝은 푸른색이 압도적이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찰스 왕세자(현 찰스 3세 영국 국왕)와 약혼할 때 꼈고 그들의 아들 윌리엄이 결혼하면서 아내 케이트 미들턴의 소유가 된 반지에 박힌 사파이어도 이곳 스리랑카산이다.
과거 유럽에서 보석만큼 귀하게 대접받은 향신료도 다양하게 생산된다. 특히 계피(시나몬)가 유명하다. 향신료 업계에서 스리랑카산 계피는 ‘실론 시나몬’이라 불리며 더 비싸게 거래된다. 다른 지역보다 더 달고 섬세하면서 덜 자극적이라고.
16세기부터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에서도 향신료와 보석을 찾아 스리랑카에 왔다. 포르투갈은 스리랑카를 소유하길 원했고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했다. 옛 이름 실론(Ceylon)도 포르투갈어 세일랑(Ceilão)에서 유래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가져갔고 이어 인도와 함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48년 독립했고 1972년에 국호를 실론에서 스리랑카(Sri Lanka)로 변경했다. 스리랑카 주류 민족 싱할라인들이 쓰는 싱할라어로 ‘눈부시게 빛나는 섬’이란 뜻.
교역과 식민 지배 흔적은 스리랑카 남부 해안에 있는 갈레(Galle)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유럽풍 등대, 성곽, 교회, 시계탑 등 지중해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의 항구도시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들이 드나들던 천혜의 항구는 1505년 포르투갈 식민지 거점이 됐고, 1658년부터는 두 번째 침략자 네덜란드가 도시 전체를 성곽으로 둘러싸며 요새로 바뀌었다. 갈레 최고의 호텔로 꼽히는 ‘아만갈라(Amangalla)’는 350여 년 전 네덜란드군 장교 숙소로 건설됐다가 150여 년 전부터 호텔로 사용돼 왔다. 20년 전부터는 세계적 리조트·호텔 기업 아만에서 운영하고 있다.
무역항으로서 갈레의 전성기는 세 번째 정복자 영국이 북쪽으로 120여㎞ 떨어진 콜롬보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면서 끝났지만, 스리랑카 최고 관광지로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다국적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실론티의 본고장 고산지대
가장 유명한 수출품은 ‘실론티’로 유명한 홍차. 생산량과 품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 홍차 브랜드 ‘립톤’도 토머스 립톤이 스리랑카에서 직수입한 실론티로 출발했다.
최고급 홍차는 해발 1200m 이상 고지대에서 생산된다. 스리랑카 고산지대는 섬 중앙 우바, 누와라엘리야 지역에 모여 있다. 스리랑카 최대 도시 콜롬보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좁은 산길을 5시간가량 힘겹게 올라 ‘티 트레일스 로지(Tea Trails Lodge)’에 도착했다. 차밭 한복판에 있는 리조트. 스리랑카 유명 차 생산 업체 딜마(Dilmah)에서 운영한다.
로지 앞 호수 건너편에 있는 홍차 공장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다. 딜마 소속 차 전문가 키스에게 실론티 생산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양한 실론티를 시음했다. 키스는 “여기 차밭은 원래 커피밭이었다”고 했다. “18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아라비아에서 커피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어요. 차나무와 커피나무는 생육 환경이 비슷하거든요. 꽤 많은 커피가 스리랑카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수출됐지요.”
스리랑카가 커피 대신 홍차로 알려지게 된 건 19세기 들어서다. 1869년 전염병이 돌면서 커피나무가 죽어나갔다. 커피산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스코틀랜드인 제임스 테일러가 커피 농장에 고용돼 스리랑카에 도착한 게 그즈음이다. 고용주는 ‘어떻게든 대체 작물을 찾으라’고 했다.
테일러는 인도 아삼에서 차나무를 가져다 재배를 시도했다. “다행히 차나무가 잘 자랐고, 뛰어난 품질의 차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스리랑카는 세계 최대 홍차 생산국이었죠.”
로지로 돌아오니 오후였다. 테라스에 앉아 호수를 에워싼 구릉을 따라 흘러내리는 짙은 초록빛 차밭을 잠시 감상했다. 종업원들이 큰 찻주전자와 스콘·샌드위치·케이크 등을 담은 3단 트레이를 내왔다. 전형적인 영국식 애프터눈 티.
홍차를 잔에 따랐다. 색이 진하면서도 밝아, 컵 주위에 금색 띠가 둘러진 것 같았다. 장미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꽃 향과 레몬·오렌지 등 감귤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실론티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단맛과 떫은맛의 조화가 중후하면서도 경쾌했다.
실론티는 밀크티로 즐겨야 제격.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홍차에 더했다. 실론티의 풍성한 맛이 우유를 만나 부드럽게 변했다. 밀크티는 쓰고 떫은 싸구려 홍차를 마실 만하게 하려고 개발된 줄 알았는데, 최고급 실론티로 만든 밀크티는 풍미를 최대한 끌어내는 음용 방식이었다.
◇야생동물 천국 얄라 국립공원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사파리 가이드가 ‘와일드 코스트 텐티드 로지’ 로비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가이드는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동물들이 오전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데다, 다른 사파리 차량들과 경쟁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15분쯤 달리자 얄라 국립공원 입구가 보였다. 사파리 트럭 수십 대가 길게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생동물 애호가라면 천국과 같은 섬이다. 고산지대부터 평야, 늪지대, 해안까지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얄라는 스리랑카에서 둘째로 큰 국립공원으로 남동부 티사마하라마 지역을 중심으로 약 976㎢에 펼쳐져 있다. 5개 블록 중 2개가 일반에 개방된다. 습한 몬순 숲부터 민물·해양 습지까지 다양한 생태계에 물소, 원숭이, 공작새, 사슴, 표범 등이 살고 있다.
얄라 최고의 인기 스타는 야생 코끼리다. 입장하자 코끼리 8마리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 아시아 코끼리들은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아담하고 동그스름한 체형이었다. 아기 코끼리는 데려다 키우고 싶을 만큼 귀여웠지만 식비가 만만찮을 듯했다. 수컷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는 “코끼리는 모계사회로 우두머리 암컷을 중심으로 암컷들과 새끼들만 같이 산다. 수컷 코끼리는 다 자라면 무리를 떠나 홀로 생활한다”고 했다.
습지 위로 각양각색 새들이 날아다녔다. 얄라에는 215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공작새가 청록빛 날개를 번쩍이며 땅에 내려앉았다. 좀 과장하면 공작새가 도시의 비둘기처럼 많았다. 밤이슬을 털어내고 깃털을 말린 수컷 공작새는 암컷들이 나타나자 뽐내듯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숲에서 화염처럼 붉은 새가 튀어나왔다. 스리랑카 국조(國鳥)라는 멧닭. 볏과 머리, 날개, 다리는 빨강·주황·노랑이 섞여 있고 몸통과 꼬리는 사파이어처럼 새파랗다. 화려하기가 공작새 못지않다.
표범은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은둔형 스타다. 야행성인 데다 나무 그늘 속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때문에 포착하기 쉽지 않다. 노련한 가이드가 땅에 찍힌 발자국이나 남겨진 흔적, 냄새를 맡은 원숭이들이 서로 ‘조심하라’며 신호하는 울음소리를 듣고 사파리 트럭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끝내 보지 못했다.
바다거북에 관심이 있다면 스리랑카만 한 곳이 없다. 전 세계 바다거북 7종 중에서 5종이 스리랑카 해안에 알을 낳는다. 얄라 국립공원에서 콜롬보까지 해안을 따라 ‘바다거북 구호소’ ‘바다거북 부화장’이라고 쓰인 건물이 늘어서 있다. 모래사장에 낳아놓은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거나, 상처 입은 바다거북을 구조해 돌봐주는 곳이다.
부화한 지 열흘 된 아기 바다거북을 손바닥에 올리자 맹렬하게 버둥거렸다. 큰 수조에는 커다란 어른 바다거북 세 마리가 있었다. 자유롭게 상하좌우로 헤엄치는 두 마리와 달리, 한 마리는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비닐을 삼켜 죽을 뻔한 바다거북입니다. 개복 수술을 받았는데, 아직 잠수를 못 해요. 물에 떠 있기만 하면 상어에게 잡아 먹힐 수 있어 회복될 때까지 보호하고 있어요.”
◇열대 모더니즘 건축과 제프리 바와
‘스리랑카 국민 건축가’ 제프리 바와(1919~2003년)가 살던 집은 콜롬보 시내 조용한 고급 주택가 골목 끝에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일본·이탈리아·미국 관광객 10여 명이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와 자택은 스리랑카 최고 명소 중 하나. 세계 곳곳에서 건축가들과 건축 애호가, 관광객들이 찾는다. 바와 자택과 그가 남긴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부유한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난 바와는 변호사로 일하다 38살에야 건축가로 전향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스리랑카 전통 건축과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조화시키며 단숨에 대표 건축가로 우뚝 섰다. 돌과 기와 등 고유한 재료를 활용하고, 전통 건축의 지붕선 등을 현대건축에 적용했다. 그의 건축은 ‘트로피컬(열대) 모더니즘’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도슨트의 안내를 들으며 집 안에 들어서자 스리랑카 전통 공예품부터 건축가가 직접 만든 가구와 조형물이 곳곳에 가득했다. 잘 보존돼 있어 마치 건축가가 잠깐 자리를 비운 듯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도슨트는 “바와가 흡연하고 커피를 마시던 장소”라고 했다. “바와는 담배와 커피를 열렬히 즐겼어요. 담배는 하루 100개비, 커피는 시간당 2잔.”
덥고 습한 열대기후에 맞게 건물 외부와 내부가 교묘하게 연결되고 분리됐다. 천장 곳곳에서 빛이 떨어지고 벽과 복도 사이사이 나무들이 자랐다. 모든 공간이 건물 밖이면서 안이고, 안이면서 밖이었다.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된, 트로피컬 모더니즘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3층에는 바와가 손님을 위해 추가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숙박이 가능한데, 방이 하나뿐이라 1년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방명록을 보니 바로 전날까지, 사흘이나 머물고 간 한국인 커플이 있었다. 바와 건축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글로벌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 문의 뚜르디메디치 (02)545-8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