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시마 가에몬(1832~1914)은 사업가로서 당대 일본 경제계의 주역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절친으로 맏딸이 이토의 며느리가 되었다. 역술에도 능하여 지금까지 일본 ‘역술의 성인[易聖·역성]’으로 불린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길흉을 점쳐 주었다. 청일전쟁·러일전쟁도 그의 점괘에 따라 개전하였으며, 을사늑약을 한국에 강요한 1905년 11월 17일도 다카시마가 정해준 날짜였다. 서울 주재 마이니치신문 후쿠오카 시즈야 기자도 “일본인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역술의 성인’으로 불리는 다카시마 가에몬. /야후재팬
일본에서 ‘역술의 성인’으로 불리는 다카시마 가에몬. /야후재팬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문제(조선 병탄)’를 매듭짓기 위해 조선에 건너가려 할 때였다. 다카시마 가에몬은 입원 중이었다. 이토는 출국을 앞두고 병문안 겸 그를 찾아간다. 출국 사실을 안 다카시마 가에몬이 점을 치더니 “운수가 몹시 사나우니 가지 마십시오”라며 말린다. 이때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문제만 해결한다면 이 한 목숨 아깝지 않습니다”라며 웃는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름에 山(산)이나 간(艮) 자가 들어간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다카시마 일생일대 마지막 점이었다. 그의 예언대로 이토 히로부미는 이름에 ‘艮’이 들어간 안중근(安重根) 의사에게 1909년 하얼빈에서 피살된다. 택일의 중요성으로 언급되는 대표적 사례다. 일본의 침략 정책을 정당화하는 ‘음모론’적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김두규, ‘그들은 왜 주술에 빠졌는가?’ 참조).

인간 세상은 과학과 이성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때[運]에 대한 믿음은 있어 왔다. 때는 물리적으로 시각·날짜·달·연이란 구체적 단위로 표기된다. 전쟁을 앞둔 장군도 언제 출전을 해야 길한지 역술인 참모에게 자문했다. 제왕절개를 앞둔 산모와 보호자에게 ‘수술 시각을 잡아오라’는 산부인과 의사도 때[운]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결혼일·이삿날부터 국가 행사까지 택일은 지금도 동아시아 3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민속이다.

금년 7월 25일부터 8월 22일까지 윤달이다. 윤달은 공달이라고도 하며, 이장·이사·수의 장만·결혼·신축 등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달이라고 한다. 역술인·이사 업체·장례 업체에 대목이 될 것이다.

집안과 공동체의 중대사(결혼·이사·이장·착공 및 준공식 등)를 치를 때 길일을 잡는다는 민속이 택일이다. 큰 행사를 잘 치를까 불안한 마음의 드러남이다. 그러한 불안을 파고드는 이들이 무당과 점쟁이(사주쟁이·풍수쟁이)들이다. 우리 민족의 택일 집착은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고려 성종 9년(990년) 6월의 일이다. 송나라 시성무(호부 관리)와 조화성(병부 관리)이 왕에게 관작과 식읍을 더해주는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 문제는 당시 고려가 택일에 얽매여 사신들이 올 때마다 반드시 좋은 달과 날짜를 택하여 조서를 받았다는 점이다. 사신들은 한 달 넘게 공관에서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화가 난 사신들이 고려를 힐책하자 겁먹은 국왕이 바로 다음 날 임명 문서를 받았다. 이 사실은 ‘고려사’뿐만 아니라 송나라 정사 ‘송사(宋史)’에도 자세히 기록되었다.

임금과 CEO의 택일관만 보아도 지도자의 자질을 가릴 수 있다. 조선 3대 임금 태종은 택일이란 행위가 사술임을 인지한다. “후세의 술사들이 많은 금기를 만들어, 길일과 길시를 택하느라 수년 동안 결정들이 미뤄지기까지 한다. 나는 일찍이 두 번이나 흉하다고 하는 날에 일을 치렀으나 아무런 해가 없었다. 이와 같은 택일 금기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여러 서적을 두루 열람하여, 성현의 말을 바탕으로 무속의 고질을 타파하도록 하나의 책을 지어 바치라.”

책은 태종 사후 아들 세종에게 ‘장일통요(葬日通要)’란 관찬서로 바쳐진다. 이 책의 결론은 “연월일시가 아무리 좋아도 좋은 땅만 못하다”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전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광해군과 명성황후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점쟁이들의 택일을 따랐다.

일본 최대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를 운영하는 팬퍼시픽 인터내셔널 홀딩스(PPIH)는 1989년 창사 이래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신주쿠 가부키초 돈키호테 전경 /유소연 기자

한국 여행객이 일본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쇼핑센터가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의 창업주 야스다 다카오는 2024년 ‘운(運)’이란 책을 출간한다. 여기서 그는 택일을 꼭 집어 비판한다. “나는 작명·풍수·사주팔자·손금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꺼리는 ‘불멸의 날(佛滅: 부처가 사망한 날로서 매우 흉한 날로 봄)’에도 매장을 개점한 적이 있다.”(노경아 번역 ‘운의 경영학’ 참고)

독자들이 힐문할 것이다. 택일을 믿으란 말인가, 무시하란 말인가? 택일의 핵심 목적은 편의성과 공동체 정신이었다. 추워도 더워도, 깜깜한 밤중도 안 된다. 더더욱 농번기와 장마철은 피해야 했다.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때가 길일·길시이며, 그때 길운이 찾아든다. CEO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