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 서울의 번화가를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거리, 그중 유난히 붐비고 흥성거리는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부는 젊은이들로 가득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서 있는 사람이 많았고 몇몇은 가게 밖으로 나와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피자를 한 조각씩 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
함께 걷던 후배가 제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들 대부분이 음주 후 집에 가기 전에 조각 피자로 ‘해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이런 문화가 젊은층에게 유행한 지 꽤 오래됐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햄버거나 피자로 해장을 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서울인데, 새벽에 해장하려면 청진동이나 용문동으로 가야 할 텐데, 저는 이런 것들을 후배에게 말하지는 않고 속으로만 삼키며 생각했습니다.

국가와 문화마다 대표하는 술이 다른 것처럼 해장 음식이 다양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진한 에스프레소로 해장하는 경우가 많고 아열대 지역에서는 코코넛 열매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러시아에서는 양배추와 오이로 수프를 만들어 아린 속을 달랜다고 했습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입니다.
물론 몸으로 경험한 것도 있습니다. 문학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을 때 전담 통역을 맡아준 젊은 중국인 친구는 숙취로 고생하는 제게 직접 토마토 계란탕을 끓여주었고, 도쿄에서 새벽까지 술을 함께 마시며 친해진 한 일본 시인은 아침부터 차가운 녹차에 흰 쌀밥을 말아 매실 장아찌와 곁들어 먹는 법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더 훤합니다. 강원 영서에서는 황태 해장국이나 북엇국을, 영동에서는 곰칫국이나 장칼국수를 주로 먹었습니다. 맑은 물길이 이어지는 내륙에서는 다슬기국을 즐겨 찾았고 해안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복어든 대구든 조개든 어떤 것을 선택할지 나름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사리나 배추가 주인공이 되는 제주의 해장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술을 사랑한 선배 문인들의 해장법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새벽마다 좁쌀을 쒀 미음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고, 술이 취하면 취할수록 맑아지고 밝아지는 경지에 이른 한 원로 시인은 매번 찹쌀죽을 쒀 드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장’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옵니다. 속을 푼다는 뜻의 풀 해(解), 창자 장(腸)의 조합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解酲’으로 표기돼 있기 때문입니다. 살펴보니 풀 해, 숙취 정입니다. 더 살펴보니 ‘해’에는 깨닫다라는 의미도 따릅니다. 어쩌면 해장은 단순히 속을 푸는 것만이 아니라 온전히 술 깬 후에 깨닫는 지혜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