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는 스케일 큰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헌 집 사서 새집으로 고치기’다. 굉장하지 않은가. 집 수리라는 작업은 엄청난 자금과 에너지,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무시무시한 이벤트다. 사람들은 낡은 집을 대대적으로 고쳐 사는 게 싫어서 아파트나 연립주택, 빌라 등에서 사는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사람은 전생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아내와 나는 벌써 이 짓을 세 번째 하고 있으니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아니라 집 수리야말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할 때마다 든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계속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임 목수’라는 든든한 일꾼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파트를 떠나 개인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장독대 때문이었다. 지리산 ‘제철음식학교’에서 고은정 선생에게 장 담그는 법을 배워온 아내는 언젠가부터 ‘장독대가 있는 집’을 꿈꾸게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도대체 장이 익지 않기 때문이다. 간장·된장·고추장은 햇볕과 바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공동주택은 아무리 공기가 잘 통하는 곳이라도 마당 장독대만큼의 햇볕과 바람을 얻을 수 없었다.
조그만 장독대 하나 얻고 싶은 이유로 고른 게 성북동 언덕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돈이 별로 없으니 언덕 위에 있는 낡은 집이라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서촌 등지에서 한옥을 짓고 고치던 임정희 목수님을 소개받았고 그와 함께 집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목수가 되고 싶어 한옥학교를 다녔던 임 목수님은 손기술도 좋지만 전체 작업 일정과 인력을 고르게 배분하는 PM(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을 특히 잘했다. 목수님이 짠 팀은 우리 집을 멋지게 고쳐 주었고 우리 부부는 그 집을 ‘성북동 소행성’이라 부르며 4년을 잘 살았다.
두 번째는 성북동에 있는 한옥이었다. 성북동의 골목길을 할 일 없이 쏘다니다가 빈집을 발견한 우리는 덜컥 계약부터 하고 임정희 목수님을 불렀다. 면밀한 계획 없이 매매 계약부터 한 우리를 보고 임 목수님은 혀를 끌끌 찼고 나는 그날부터 공사비를 구하러 은행을 돌아다녔다. 마침 둘 다 회사를 그만둔 시점이라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현장으로 가서 임 목수님에게 작업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고 그때그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임 목수님은 판단이 빨랐다. 우리의 주문이 정당하다 생각될 때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가차 없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한 대답은 “네” 한마디였다.
건축주인 아내와 나의 생각은 단순했다. 어차피 나는 이런 쪽엔 젬병이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집 수리에 대해서 아는 게 얼마나 되겠어? 그런데 목수나 미장공, 페인트공은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그 일에 이미 도가 튼 사람들이잖아.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생각해 보자고. 클라이언트는 돈을 내는 사람이라서 언제든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잖아. 그러다 보면 전문가 의견을 뭉개기 쉽고…. 우리는 그런 관행을 바꿔 보고 싶었다. 나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고 아내도 출판 기획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돈 많은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조언에 밀리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은 우리라도 전문가 의견을 한번 존중해 보자. 그래서 임 목수님 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로 고치게 된 집은 엉뚱하게도 충남 보령에 있는 개인 주택이다. 보령으로 이사를 간 건 우연이었다. 우리는 둘 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까 꼭 서울에서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보령 한 달 살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했고, 대천과 보령이 사실은 같은 곳이라는 게 재밌었고, 대천해수욕장 해변을 걷다 보니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싶어 또 낡은 집을 한 채 사게 된 것이다. 우리 연락을 받고 보령으로 내려온 임 목수님은 또 한숨을 길게 내쉬었지만 결국 우리 집을 멋지게 고쳐 줄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도 했는데 세 번째라고 못 하겠는가.
흔히 건축주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에 가장 흔한 게 처음엔 “어머, 전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하다가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공부를 해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한 다음에 “이건 이렇게 했음 좋겠어요”라고 아는 척을 하는 거라 하지 않던가. 글쓰기 전문가인 나는 집 고치기 전문가인 임 목수님, 장 반장님, 김 목수님을 존중할 것이다. 그게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을 가져온다’는 뜻의 식자우환(識字憂患)을 피하는 길이라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