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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0여 국에서 대선·총선·지방선거 등을 치르고 총유권자만 40억명에 달해 ‘글로벌 수퍼 선거의 해’로 불린 2024년이 저물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라지만 여러 나라에서는 선거발(發) 혼돈이 되풀이됐다.

미국 대선은 극한의 진영 갈등 속에 유력 후보 암살 시도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국·프랑스·일본에서는 집권 세력이 정국 안정을 위해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다 소수파로 전락하며 혼란이 가중됐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집권 세력의 노골적 개입으로 독재 연장 수단으로 악용됐다.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로 꼽혀온 한국에서는 선거 시스템을 불신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인을 투입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지구촌 선거 뉴스가 부정적 일색만은 아니었다. 면적은 한반도의 2.7배, 인구는 대구보다 조금 많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지난 10월 선거를 돌이켜 본다. 대통령 선출권을 가진 국회의원 57명을 뽑는 선거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독립 후 58년 동안 집권했던 여당 보츠와나민주당이 기존 34석에서 30석을 잃으며 참패했다. 소수 야당 연합체인 민주변화연합이 36석을 쓸어 담으며 압승했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보석’으로 불려왔다.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된 다이아몬드가 창출하는 국부를 바탕으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했고 사회는 안정된 데서 유래됐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하고 실업률이 급등하며 민생이 악화하자 유권자들은 가차 없이 표로 집권 세력을 심판했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에 국제사회까지 긴장했다. 부정선거·선거 불복·쿠데타·내전 등을 겪으며 최빈국으로 전락한 비극을 겪은 다수 아프리카 나라처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곧바로 결과에 승복했다. 집권당을 이끌던 모퀘에치 마시시 대통령은 정적이자 후임 대통령인 두마 보코 야권 연대 대표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고 신속한 정권 인계 절차를 진행했다. 미국이 국무부 성명으로 당선자를 축하하면서도 평화적 정권 이양에 나선 대통령에게까지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보츠와나의 정권 교체는 집권 세력의 내부 분열로 여당 유력 인사들이 야권에 가세하는 등 ‘정치공학적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최대 10년인 이 나라에서 최초로 선거로 여야 정권이 바뀌면서 대통령이 5년 만에 물러나는 자체가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이 순조로운 정권 교체는 아프리카에 대한 통념을 깨는 데 일조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보석’이라는 명성에 조금의 흠집도 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츠와나는 2014년 북한의 한반도 평화 위협과 인권 유린을 비판하며 선제적으로 외교 관계를 끊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위기에 처한 선거가 그래도 민주주의의 꽃임을 몸소 보여주며 혼돈의 지구촌에 작지만 강한 울림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