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폭(학교 폭력)’ 문제로 하루 만에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이 철회된 정순신 변호사 논란을 보면서 드는 궁금증은 “(저런 개인사를 갖고 있는데) 왜 저 자리를 하고 싶다고 나섰을까”였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질없는 공직 욕심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국수본부장은 청문회를 안 거친다. 그래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안일한 발상이다. 5년 전 그 학폭 논란을 보도한 기자들이 이 사건을 잊을 리 없다. ‘정순신’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자연스레 “그때 그 검사네” 기억을 떠올리면서 ‘부적절한 인사’라는 속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언론사 속성이다. 이런 간단한 결말도 몰랐다면 그 판단력만으로도 자격 미달이다.

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뉴스1]
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뉴스1]

그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행태를 보자면 그런 의심이 더 든다. 이미 학교와 교육기관 판단이 끝났는데도 굳이 재판까지 끌고가면서 아들에게 유리한 처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 흔적만 봐도 그렇다.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가 아니다. 아무리 자식 문제라지만 검사가 원래 불의를 가리는 직업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지난해 서울 강남 유명 사립 초교 학폭 사건을 알아본 일이 있다. 6학년생 3명이 1명을 괴롭힌 장면이 교내 CCTV에 찍혔다. 화면을 보면 동작이 확연한데도 가해 학생들은 “자기도 맞았다”면서 피해 학생을 쌍방 폭행으로 맞고소했다. 피해 학생 부모가 경찰까지 사건을 끌고가서야 “피해 학생은 (저항하다 나온) 정당방위”이고 “가해 학생은 폭행이 맞는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마음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피해 학생 아버지는 사과는커녕, 폭행을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가해 학생과 그 부모들 태도에 “너무 슬펐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심까지 가서 시비가 가려졌는데도 그 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 논란이 되니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부모로서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했지만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겠다”고 말한 대목은 씁쓸했다. 진작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

인사 검증 실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풍문도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게 검찰 조직이라 들었다. 당시 보도에 ‘검사 집안’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 안팎에서 구설이 오갔을 텐데 5년밖에 안 된 일을 검찰은 물론, 정보·사정 기관들까지 파악하지 못했다니 그게 더 이상하다. 세평(世評)을 수집하는 게 인사 검증 과정 중 하나라고 하면서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고 한 대통령실 해명은 앞뒤가 안 맞는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참사다.

학폭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에 시청자들이 여전히 열광하는 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그런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마 속 뜨거운 미용기로 급우를 지지는 끔찍한 장면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기가 막힌다. 최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폭 경험(목격·피해·가해)이 하나도 없다고 응답한 학교는 초교 9.8%, 중학교 13.9%, 고교 15.4%에 지나지 않았다. 80~90% 학교가 학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부가 학폭 관련 대책을 다시 돌아보겠다고 한다. 아직도 학폭에 시달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 정 변호사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들과 함께 피해 학생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다. 그나마 남은 상처를 봉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