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00:00
작년 12월 30일 서울 시내 한 먹자골목이 한산하다. 3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도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뉴스1
작년 12월 30일 서울 시내 한 먹자골목이 한산하다. 3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도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뉴스1

어쩌다 수입차를 끌고 다니게 되면서 불편한 게 있다면 정비다. 공식 정비 시설이 만성적으로 부족해, 일 년에 한 번 엔진오일을 바꾸는 것도 큰일이다. 주말은 예약이 꽉 차 있고, 평일도 며칠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집에서 가까운 경정비 전담 시설에 전화를 거니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가보니 줄줄이 대기 차량이 늘어서 있던 예전과 달리 텅 빈 주차장이 썰렁하기까지 했다. 점화 플러그, 브레이크 오일 등도 한 번에 바꿨는데 접수 후 2시간 뒤에 끝났다는 전화가 왔다.

해마다 몇 만대씩 판매되는 이 회사 차량의 소모품 수요가 줄었을 리 없다. 지난해 6월 기준 총등록차량만 봐도 2023년 대비 5만2000대 늘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꼭 필요한 소모품 교환까지 미룰 정도로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한 것 아닌가 싶었다. 나만 해도 교체 시기가 됐지만 지난달 내내 버텼다. 일단 허리띠부터 졸라매야 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자료가 있는 경제심리지수는 지난달 83.1로 한 달 전보다 9.6포인트 급락했다. 2020년 코로나19,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03년 카드 사태 등이 터졌을 때나 있었던 낙폭이다.

경제학자들은 비상계엄 사태같이 갑작스레 발생한 불확실성이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에도 적잖은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소비, 투자, 고용 같은 일상적인 경제 활동이 모두 얼어붙기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이 갑작스레 둔화되면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가해진다. 불확실성의 강도가 높고, 사태가 장기화되면 장기적인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사건이 일회적이지 않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불확실성이 될 경우 실물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다. 기업의 경우 일시적인 사건이면 투자를 잠깐 멈추는 정도지만, 몇 달 이상 지속되는 사안이면 아예 취소시켜 버리는 것이다. 2021년 전미경제학회보(AER Insights)에 게재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영향을 다룬 한 논문(News Uncertainty in Brexit U.K)은 국민투표 가결 이후 언제, 어떻게 탈퇴할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3년간 국내총생산(GDP)의 2%가 날아갔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비상계엄 사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금융 위기를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블랙스완’과 같은 사건이다. 대외 교역 비중이 높고 국제금융 시장에서 아직 신흥국 취급을 받는 한국 같은 나라에선 기존 리스크도 다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정치와 그로 인한 정부 정책에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불확실성이 더해진 것이다. 초헌법적 수단까지 사용해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공격하고, 제 기능을 못 하는 헌정 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은 각국의 신문 기사에서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과 연관된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를 두고 지수를 만들었다. 대통령 임기별로 월평균값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까지 241.4로 문재인(188.9), 박근혜(141.5) 정부보다 훨씬 높다. 추세적으로 값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 지표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정책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걸 보여준다.

지금처럼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에 영향을 직접 영향을 미친 적은 드물다. 유권자들은 점점 더 누가 지금의 위기를 원만하고, 빠르게 수습하는지 주시할 것이다. 정치인들이라면 여야 막론하고 인터넷의 강경론보다 매출 하락에 울상 짓는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