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00:0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40대가 되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적표 체육 과목에 ‘우’가 찍히기 시작했던 운동치라 다른 참석자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코트에 선 지 만 2년이 됐다. 등산과 헬스장 출입을 제외하면 이 정도로 꾸준히 운동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남과 어울려 뛰는 걸 왜 이제야 했을까 후회가 됐다. 중장년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가지는 데 타인과 함께하는 생활체육이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겸허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간 해왔던 일로 약간의 인정도 받고, 경제력과 인맥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사회적인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신 공 잘 못 치고 나이만 든 중년 남성이라는, 냉혹한 생활체육 세계에서 가장 기피되는 대상만 있을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문한 사람들이 실력이 쑥쑥 늘면서 잘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자연스레 만날 일이 사라지는 경험도 겪곤 했다. 함께 칠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코트를 구하는 성의가 필요했고, 좋은 매너는 필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테린이(테니스와 어린이의 합성어로 입문자를 의미)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너그러운 태도로 함께 어울려 준 선배 동호인들 덕분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긴요했다. 신체 능력이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멘털이다. 어느 날은 내가 생각해도 잘 칠 때가 있지만, 또 어느 날은 실수를 연발할 때가 있다. 꼭 중요한 순간에 실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 안 풀릴 때 마음까지 흔들리면 그날 경기는 산으로 가버리고 만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습관은 현실에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선수와 동호인들이 정신적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지 다룬 ‘테니스 이너 게임’이란 책을 2022년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며 몇 번을 읽었다고 추천한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 부딪히면서 중년 남성이 상실하기 쉬운 사회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어울린 사람들도 2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다. 인터넷을 통해 파트너를 구하다 보면 진상이라 할 만한 경우도 가끔 만난다. 그럴 때 바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부드럽게 상황을 풀어가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고려해야 한다.

테니스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늘 강인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자신의 성공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덜어낼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발전과 단단한 내면에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걸 늘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감정 노동이라 할 만한 행동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은퇴 연령이 계속 늦춰지는 시대에서, 조직이나 직업에서 한 사다리를 쭉 올라가는 삶만 살 수 없다. 오래 살고, 오래 일해야 하는 시대에 내가 가진 기득권은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찾는 과정은 사회생활을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기 십상인 중년 남성 입장에서, 원활하게 다른 사람과 일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익히는 건 자격증이나 전문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생활체육은 몸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기에, 건강뿐만 아니라 경력을 지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요즘 누군가 “제2, 제3의 인생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볼 때 “남과 어울려 함께 하는 운동을 시작해 보세요”라고 답하는 이유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