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세 1위가 한국은행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법인세 빅3 대기업’보다도 많아졌다. 지난해 한은의 당기순이익이 역대 둘째로 많은 7조8189억원이고 이에 따라 올해 납부하는 법인세액이 2조5782억원이라고 한다. 글로벌 증시 호황과 금리 하락의 여파로 외화 자산 운용 수익이 급증한 덕분이다. 법인세를 1년 전(5018억 원)보다 5배 넘게 낸다.
▶한은도 2016년부터 1조원 넘게 법인세를 내는 거액 납세자였으나 부동의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에는 못 미쳤다. 2018년 삼성전자 법인세 납부액은 16조8000억원으로, 단일 기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법인세를 냈다. 그러다 반도체 불황으로 2023년 11조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다시 흑자 전환해 지난해 영업이익이 12조4000억원에 달하지만 전년도 손실을 다음 연도에 공제해주는 것 등을 적용하면 올해 삼성전자 법인세는 수천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세금이다. 산업혁명으로 큰돈을 버는 기업들이 등장하니 1861년 영국이 소득세법을 개정해 기업을 법적 인격체(legal person)로 간주하고 독립적 납세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년) 와중에 재정이 악화되자 잠깐 법인 과세를 도입했다가 폐지했다. 그러다 1909년에 법인 소득이 5000달러를 초과하면 1%를 과세하는 ‘법인 특별세’를 도입해 법인세 시대를 열었다.
▶각국 정부가 재정 확충을 위해 법인세를 걷고는 있지만 가급적 낮은 세율을 매기려고 경쟁하는 이상한 세금이다. 기업 이익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기보다는, 낮은 세율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번 돈을 투자와 고용에 재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라 경제에 더 이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도 아닌 한은이 제일 많은 세금을 내게 됐다는 것은 한은의 운용 수익이 급증한 덕분도 있지만 기업들이 돈을 별로 벌지 못했다는 말과 동의어여서 그리 달갑지 않은 뉴스다.
▶우리나라는 전체 세수 328조원 가운데 법인세(62.5조원) 비율이 19%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불황으로 기업들 실적이 좋지 않아 법인세 납부액이 전년(80.4조원)보다 18조원 줄어 정부 재정난도 가중됐다.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납부액은 12조원에서 7조원으로 급감했다. 법인세 많이 내는 기업이 늘어 ‘한은의 법인세 1위’ 뉴스는 올 한 해로 끝나고 내년에는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