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18년 전(2007년 4월), 당시 정부·여당은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렸다. 연금 보험료로 내는 돈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2.9%로 올리고, 받는 돈은 평균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야당 등의 반대로 이 법안은 부결됐다.
당시에도 “연금 개혁이 늦어지면 연금 파탄도 파탄이지만 당장 하루 800억원씩의 잠재 부채(걷는 것보다 더 지급되는 돈)가 국민들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며 연금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서 연금 개혁 요구가 컸다. 그런데 이 개혁안을 반대한 야당은 놀랍게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과 손잡고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수정안을 맞불로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여당 안과 한나라당·민노당 안은 모두 부결됐다. 대신 국민연금을 덜 받게 되는 경우를 대비해 만든 ‘패키지법안’만 통과됐다. 65세 이상 노인 소득 하위 60%에게 평균 소득의 5%를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법이 이때 만들어졌다. 당시 정치권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 이듬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선거를 앞둔 국회가 연금 개혁은 외면한 채 재정 부담을 키우는 선심성 정책만 통과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약사발(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걷어차고 사탕(기초노령연금법)만 삼킨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때 연금 개혁 무산의 배경에는 정책적 논쟁뿐 아니라 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정치적 감정’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열린우리당 복지위 간사는 “모 인사가 아무리 밉더라도 원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13표 차이로 부결됐다. 유시민 장관은 “중요한 법안을 처리하는 데 방해된 것 같다”며 사의를 표했다. 언론들도 “정부의 연금 개혁안 부결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유시민 장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개인적인 거부감이 컸다”고 지적하며, 중요한 국가 정책 결정이 국회의원들의 사감에 좌지우지된 것을 비판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정부와 한나라당은 극적으로 합의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한나라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여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라는 현 제도가 만들어졌다.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낮추는 수준에서 절충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은 1998년 김대중 정권 시절 3%에서 9%로 올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다시 연금 개혁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직전이다. 18년 전 마지막 연금 개혁 사례를 들춰보는 것은 그때처럼 ‘정치적인 감정’으로 연금 개혁이 무산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힘이 ‘더 내는’ 연금 개혁을 무산시킨 한나라당의 흑역사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현재 여야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소득대체율도 정부가 42%를 주장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접점을 찾은 44%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은 이렇게 의견 일치를 본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2월에 통과시키자고 한다. 그런데 여당에선 지난 6일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민주당 주장대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모수 개혁을 먼저 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자, 다음 날 원내 협상 총책임자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민주당 주장대로 한다면 고작 7~8년 재정 고갈을 늦출 뿐 근본 해결 방안이 안 된다”고 딴소리를 했다.
여당 불협화음 배경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연금 개혁 주도권을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갖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극적 타결을 코앞에 두고 있는 연금 개혁에 발목 잡는 쪽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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