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성형으로 버무려진 기묘한 잿빛 역사라고나 할까. 기린 조각상으로 장식된 도쿄 긴자 니혼바시(日本橋)의 이미지다. 에도(江戶) 시대 전국에서 몰려든 물산의 집산지이자 교환지였던 곳이 니혼바시다.
니혼바시 동쪽 하천을 따라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가부토진자(兜神社)가 있다. 고가도로 아래 들어선, 열 평 남짓한 이색 공간이다. 가부토는 투구를 의미한다. 투구를 모시는 신사인 셈이다. 작은 공간에 기도용 제단과 투구 모양 조형물이 있다.
가부토진자는 일본에서 유명한 공간이다. 특히 돈에 관련된 기원을 하려는 사람은 혼자서 조용히 가부토진자에 들른다. 가부토진자는 도쿄증권거래소 바로 옆에 있기도 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상징물은 거세되지 않은 수소, 불(Bull)이다. 쉬지 않고 달리고, 머리를 위로 올리면서 공격을 하기 때문에 ‘상종가(上終價) 증시’를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의 상징은 장수풍뎅이다. 장수풍뎅이는 적을 만나거나 위기에 직면하면 두 개의 집게를 위로 쳐올리는 버릇이 있다. 먹이를 잡거나 싸울 때도 머리를 위로 든 채 집게 두 개로 공격한다. 머리를 항상 위로만 올린다는 점에서 역시 상종가에 어울리는 이미지다.
일본어로 장수풍뎅이를 ‘가부토무시(兜蟲)’라고 한다. 직역하면 ‘투구벌레’다. 투구를 모신 가부토진자는 결국 도쿄증권거래소의 상징인 장수풍뎅이를 모신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장수벌레는 월스트리트의 상징 수소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게 작은 곤충이다. 열 평 남짓한 초(超)미니 신사인 가부토진자도 일본이라는 글로벌 경제대국의 위상과 걸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서 크기 같은 외면보다, 작더라도 그 속에 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이 느껴진다.

이시바가 트럼프에게 투구를 선물한 이유
2월 7일 미일(美日) 정상회담이 열렸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준 선물이다. 이시바 총리의 고향 돗토리(鳥取)현에서 제작된 가부토, 즉 투구다. 40cm 높이의 금빛 찬란한 투구로, 16만 엔짜리 전통 수공예 제품이다.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투구를 선물한 이후 돗토리현의 투구 가게에는 2년치 주문이 들어왔다고 한다. 돗토리현은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쯤 되는 지방이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총리 덕분에 지역 이미지와 자존심도 올라간 듯하다.
투구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의 징표이기도 하다. 보통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소년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가 투구다.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크고 작은 투구 하나쯤은 갖고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거안사위(居安思危·평안할 때 위기를 생각함)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할까?
이시바 총리는 무슨 생각으로 트럼프에게 투구를 선물했을까? 투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미일 운명 공동체를 상징하는 선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일본은 미국과 운명을 같이하는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적(敵)이 나타날 때는 일본도 투구를 쓰고 트럼프와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것이다. 일본이 그런 자세를 갖고 있는 한, 일본의 적이 나타날 경우 ‘트럼프도 투구를 쓰고 이시바와 함께 싸워야만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일본의 결의와 함께 미국의 의무와 책임을 투구를 선물하는 것으로 표현한 셈이다.
둘째, 투구는 칼이나 총, 미사일 같은 공격용 무기가 아닌 방어용 장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바 총리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도(日本刀)가 아니라 방어용 군장(軍裝)인 투구를 트럼프에게 선물했다. ‘강한 미국’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리에는 맞지 않는 선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유사시 일본의 역할은 투구, 즉 방어용 전쟁에 한정된다’는 의미를 담아 투구를 선물한 것일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투구를 트럼프에게 선물하면서, 일본의 결의를 전달하면서도 그 한계도 분명히 전한 것이다.
네타냐후 ‘황금 삐삐’ 속 ‘디커플링’ 충고
2월 7일의 미일회담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 정상회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 첫 번째 외국 정상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히 여기는 우방 순위로 정상회담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시바-트럼프 회담 사흘 전인 2월 4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으로 만든 삐삐(무선호출기)를 선물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오직 이스라엘만이 상상할 수 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어떤 생각으로 삐삐를 선물했을까? 이스라엘이 지난해 9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상대로 벌인 무선호출기 폭발 사건을 자랑하기 위해서일까? 한순간에 헤즈볼라 요원 3500여 명을 무력화(無力化)시킨 이스라엘의 첩보 능력을 알리고 싶어서일까?
필자 생각으로는 이 황금 삐삐 선물은 미국에 대한 경고와 충고가 동시에 담긴 ‘섬뜩한’ 선물이다. 삐삐 폭발 사건을 통해 재확인됐지만, 인터넷부터 전선(電線)에 이르기까지 적과 연결된 디지털 장비와 장치 모든 것이 ‘즉석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적은 이슬람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국이라도 이스라엘의 국익(國益)에 어긋날 경우 헤즈볼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암묵적 경고’가 삐삐 선물에 담겨 있다. 아마도 황금 삐삐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금 삐삐에는 경고와 함께 충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충고의 핵심은 디커플링(decoupling), 즉 차단이다. 트럼프-네타냐후 회담을 통해 가자지구 (地溝) 개발 구상이 공표됐다. 200만 팔레스타인 난민을 이집트와 요르단에 강제 이주시킨 뒤, 가자지구를 리조트로 개발해 미국에 넘기겠다는 계획이다. ‘뉴욕 부동산왕’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춘, 네타냐후 총리의 묘안인 듯하다. 말이 리조트 개발이지, 사실상 미국을 앞세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영구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황금 삐삐는 요르단강 서안(西岸)과 가자지구를 디커플링, 즉 분리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삐삐 암살작전에서 보듯, 서안-가자가 서로 연결되면 위험하니까 아예 끊어버리자는 생각이다. 난민들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일시 옮긴다고 하지만, 나중에 가자 개발 후 재정착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人)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물론 정착 조건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황금 삐삐는 적과의 교류나 대화가 아닌, 완전한 디커플링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상징이다. 더 나아가 무장 이슬람권은 물론 중국처럼 미국의 국익에 방해되는 나라는 디커플링으로 대해야만 한다는 충고가 황금 삐삐에 담겨 있다.
‘모범생 꼰대 정치인’ 이시바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일본 내 평가는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회담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이시바 총리는 ‘모범생 꼰대’ 이미지가 강한 정치가다. 30여 년 전 처음으로 중의원(衆議員)에 당선된 이후 국회의원 전용 숙소에 머물며 혼자 식사를 하면서 안보 관련 공부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말도 짧고 친구도 거의 없으며, 음식도 항상 카레라이스만 시켜 먹는 오타쿠(オタク) 타입 정치가다. 정적(政敵)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가 장기 집권을 하는 동안 이시바는 지방 발전 관련 한직(閑職)만 전전했다. 이시바 총리는 그러면서 지방 발전 전문가로 발돋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 유지들과 자주 만난 탓인지 한층 더 느리고 둔한 ‘꼰대 정치인’이 됐다. 웃음과 조크가 이어지는 아베 전 총리의 외교 스타일과 180도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일본인의 70% 정도는 멀리하고 싶어 할 것 같은, 20세기 초반에나 어울릴 법한 구식 정치인이다.
그래서인지 이시바 총리에 대해서는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된 후 공백기를 틈타 등장한 ‘구원투수’ ‘임시 총리’라는 평가가 강하다.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이른바 ‘트리플 레드(Triple Red)’ 환경 속의 ‘스트롱 맨’ 트럼프에 맞설 만한 캐릭터가 못 된다는 것이 이시바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실패는 모면한 회담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시바, 트럼프의 직접 공격 모면
패전(敗戰) 후 맥아더 장군을 만나러 가는 쇼와(昭和) 천황을 대하는 심정이랄까. 당초 일본 외무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시바 총리의 면전에서 일본을 비난하거나 회담 중 관세를 왕창 올리는 식의 도발을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그 직후 2월 12일 열린 미국-요르단 정상회담에서 그 같은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전에 요르단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17억 달러에 달하는 지원금을 끊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는 연간 1000억 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성향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알 수 없었다.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100% 인상’ 같은 선언도 눈 깜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을 더 찬미하고 가까이하려는 인물이다. 좋고 싫고를 떠난 전략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지만, 가까울수록 멀리하고 멀수록 가까이하려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캐나다나 유럽을 대하는 자세에서 보듯, 동맹이라도 적 이상으로 인정사정없이 대한다.
일본도 그 같은 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한 호의와 더불어 미국의 직접적인 도발·공격에서 벗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근·알루미늄에 대한 25% 일률 관세도 이시바 총리의 미국 방문 3일 뒤에 공식 발표하면서, 그것이 일본만을 타깃으로 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상회담 직전 ‘지원금 중단’ 협박을 당한 요르단 국왕과 달리, 이시바 총리는 전 세계 국가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부과된 관세 공격을 정상회담 3일 뒤에 통보받았다. 이쯤 되면 ‘이시바 우대, 일본 예외’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이 당장 일본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포함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US스틸 문제
이시바 총리는 US스틸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잠정적 허가를 받아냈다. 이시바 총리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일본 총리는 ‘일본 기업의 전령사’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한국 대통령이 기업을 끌고 가는 능동형이라면, 일본 총리는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기업에 끌려가는 수동형이다. 경단련(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지지하지 않을 경우 총리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경제계의 지지가 사라지면 총리와 정당에 대한 정치 헌금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US스틸 문제는 이시바 총리의 실력을 가늠할 잣대였다. 결과는 ‘매입(purchase)이 아닌, 투자(investment)라면 받아들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제철 대표와 만날 것도 확약했다. 대략 50% 정도 만족할 수준이지만, 조 바이든 전 대통령처럼 ‘백지 무효’가 아니란 점에서 일본 기업을 안심시킨다. 매입의 경우 100% 경영권을 가질 수 있지만, 투자의 경우는 50% 이상 지분을 갖지 않는 한 경영권 장악이 어렵다. 실제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50% 이상 지분을 통한 일본의 경영권 장악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US스틸 문제는 협상을 통해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할 복잡한 사안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회담 결과 이 문제는 이시바 총리의 외교력을 탓할 수 없는, 일본제철 자신의 능력에 달린 문제로 변했다는 점이다.
‘거부전략’
안보 문제는 당초 일본이 가장 걱정하던 분야였지만, 우려와 달리 미일 동맹관계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을 적으로 하는 강력한 미일동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센카쿠(尖閣)열도와 같은 일본 영토뿐 아니라, 남중국해 전체에 걸친 시진핑(習近平)의 팽창정책을 미일을 중심으로 막아내려는 의지가 공동성명 속에 녹아 있다. 한미일 삼각안보 체제부터 미국-일본-인도-호주로 이어지는 쿼드(Quad), 미국-일본-필리핀, 미국-일본-호주로 연결되는 다양한 국제 안보 체제를 통해 반중(反中) 전선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차관으로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A. Colby)가 공표했듯이, 중국에 대한 ‘거부전략(Denial Strategy)’은 이미 트럼프2.0시대의 최고 군사안보 어젠다로 부상(浮上)했다. 간단히 말해 중국이 무력(武力)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생각 자체를 못 갖도록 만드는, 미국의 압도적·절대적 파워를 구축(構築)하겠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미국뿐 아니라 미국과 이익을 함께 나누는 동맹국과 중국 주변 모든 나라를 끌어모아 ‘반중 연합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부전략’은 미국 주도로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공격 전략은 아니다. 중국발(發) 공격을 압도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방어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냉전(冷戰) 당시의 봉쇄정책과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지하면서 대항하는, ‘공존공영(共存共榮) 속 긴장’이란 점에서 다르다. 말이 방어적이지 실제 현실에서는 공격인지 방어인지 모를 애매한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日, 일찍부터 美-中 디커플링 예견
분명한 것은 중국은 미국과 자유 세계의 명백한 적이란 점이다. 트럼프-이시바 공동성명에서는 중국을 ‘불법적인 해양주권 주장(unlawful maritime claims)’ 국가로 규정했다. 그전까지는 ‘힘에 의해 세력 균형을 파괴하는 나라’ 정도로 표현했지만, 2월 7일 정상회담에서는 ‘불법’ 이란 강력한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셰셰(謝謝) 외교’ 신봉자라면 ‘설마’로 믿고 싶겠지만, 미중 타협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중국이 대만(臺灣) 무력 공격을 포기한다고 해서 미중 관계가 개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만 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구는 하나밖에 없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전 세계 자원과 정보를 송두리째 끌어가고 있다. 중국인이 미국인의 생활 수준에 도달하려면 지구가 6개 더 필요하다고 한다. 가만히 둘 경우 미국이 고립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반중 노선은 심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미중 디커플링은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민주당 대통령이 나타난다고 해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경제만이 아닌 AI와 심지어 인적(人的) 교류도 디커플링 될 것이다.
일본은 그 같은 글로벌 현실을 누구보다도 일찍 체득한 나라다. 32년 전인 1993년 4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의 경제 성장이 곧 민주주의 정착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중국 경제 발전=서구화=민주주의’라고 보던 당시 서방의 낙관적 중국관(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21세기 초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시진핑이 전 세계의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같은 정세 판단에 따라 인도를 대중(對中) 전선에 끌어들인 인물도 아베 전 총리다.
이번 이시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각별한 정(情)을 표시한 것은, 골프라든가 인간적 케미스트리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실천했던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 없는 한반도 문제 논의’
미일이 공동 대응하기로 한 북핵(北核) 문제는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엄 쇼크’ 이후 ‘한국 없는 북핵 문제’ ‘한국 없는 한반도 문제’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트럼프-이시바 회담의 북핵 문제 결론은 2023년 1월 열렸던 바이든-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미일 정상회담 당시와 비슷하다. ‘북한 내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DPRK)’가 그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적당히 타협하거나, 한국 야당이 주장하는 식의 ‘한반도 전체 비핵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크게 보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물론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국 반입도 염두에 둔 합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한 ‘북한 비핵화’인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앞으로 북핵 관련 미일 실무자들이 만나 각론(各論) 작성에 들어갈 것이다.
일본 외교계에서는 과거 ‘아베의 역할’이 트럼프-김정은 협상 실패의 최대 원인이었다는 것이 상식이다. 트럼프 1.0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는 빈번하게 통화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런 통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많이 했다. 아베는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말을 절대 믿지 말라. 검증이 필요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김정은으로서는 아베 전 총리를 미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미북 정상의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일본 영향권 밖”이라고 말했다. 이시바는 아베처럼 북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트럼프-김정은 만남에 관한 이시바 총리의 제3자적 자세는 ‘북핵 문제를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임한다’는 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비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쿠션 하나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성급한 북핵 해결’이 추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시바 외교를 ‘아부’라고 비웃는 한국 언론
아래로 내려다보는 갑(甲)의 시선이랄까. 한국에서는 이시바 총리의 워싱턴 행보를 ‘예술로서의 아부(the art of flattery)’라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색안경을 쓰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시비를 거는 미국 리버럴 미디어의 시각을 그대로 베낀 ‘속좁은 생각’에 불과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부가 아니라 ‘상호 신뢰(the art of mutual confidence)’가 미일 정상회담을 압축 설명하는 키워드다. 아부라는 표현은 미국 리버럴 미디어의 스테레오타입화된 트럼프관(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이시바 총리의 외교를 ‘아부의 기술’이라고 비틀어 표현한 것이다. ‘이시바=아부 총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트럼프=아부를 즐기는 얼빠진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아부로 따지자면, 이시바 총리의 아부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네타냐후의 ‘트럼프 용비어천가’를 들으면 속이 뒤집힐 정도다. 그에 비하면 이시바 총리의 아부는 통상적인 외교상의 립서비스(lip service)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는 ‘이시바=아첨·아부’라는 식으로 내려다본다. 국익·국가·국민을 위해 기꺼이 머리를 숙이는 지도자에 대한 경의는 보이지 않는다. 반일(反日)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미국 리버럴 미디어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외교를 ‘평등·동등한 국가간 만남’이라 믿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현실은 정반대다. 외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와 같다. 뭔가 하나라도 얻으려면 아래쪽 운동장에라도 들어가야만 한다. 북한처럼 하루 종일 운동장 탓만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간 출전권 자체가 사라진다. 네타냐후 총리나 이시바 총리 모두 출전권을 따고 2차, 3차 토너먼트에 올라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부’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이다. 립서비스는 돈이 안 들지만, 찡그린 얼굴과 불만에 찬 침묵은 엄청난 국가적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자회견 중 총리에 쪽지 전달한 참모들
미일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중 이시바 총리가 메모지를 두 번이나 받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시바는 종이를 받는 즉시 뭔가 낙담하면서 고민에 찬 얼굴로 변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 메모 내용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시바 총리가 일본으로 돌아온 후 한 기자가 그 메모 내용에 대해 물어봤다. 이시바 총리는 ‘이대로 가면 (미국 정치에 관한) 트럼프 말만 듣다가 끝난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직전에 일론 머스크 관련 뉴스가 터졌다. 미국 기자들은 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도 양국간 문제 이외 현안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묻는다. 미일 정상회담을 설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인데도 머스크 관련 질문만 이어졌다. 그러자 일본 측 관계자들이 이시바 총리에게 ‘빨리 미일 관계와 관련된 총리의 생각과 입장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주문하는 메모를 전달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외교의 특징, 아니 저력(底力)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곧바로 총리에게 수정 주문을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왕과 주변 신하의 합작품이다. 주변에서 누구든 정색을 하고 ‘아니다’라고 말했다면 ‘벌거벗은 임금님’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기자회견 중인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수정이나 대응책을 메모로 전달할 인물, 여건, 분위기가 한국 내에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에는 그런 인물, 여건, 분위기가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총리에게 경고장을 보내면서 방향 수정을 독촉했다. 참모로부터 메모지를 받는 순간 이시바 총리도 기분이 안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익을 위한 중지(衆智)’라는 측면에서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일본인의 상식이다.
한국, ‘동북아의 캄보디아’가 되나
2025년 2월 말 현재 한국은 트럼프 외교의 영역 밖에 있는 나라가 됐다. ‘한국 없는 한반도 문제 논의’가 시작됐다. 경제적 공세도 한꺼번에 몰려들 조짐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응하고 방어할 잔략전술은커녕, 그렇게 할 주체(主體)도 결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트럼프 2.0에 대한 대응 이전에, 사태를 책임질 지도자와 조직을 가진 보통·정상국가를 다시 수립하는 것이 시급한 처지다. 그러나 내일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경우라도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외교 전략은 준비돼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 탄핵이나 조기(早期) 대선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 외교의 방향과 대응을 ‘1분 대기조’처럼 갖춰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트럼프와 미국의 제1 관심은 반중 전선이다. 한국은 아직 어정쩡한 상태로, ‘박쥐 외교’로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이시바 회담이 이뤄지는 동안 야당 출신 한국 국회의장이 시진핑을 만났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국회의장이 시진핑을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기가 중요하다. ‘트럼프 유탄(流彈)’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 세계가 몸을 사리는 때에 그런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한국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박쥐 정도가 아니라, 중국 뒤를 따르는 ‘동아시아의 캄보디아’로 여길 수도 있다.
일본은 1조 달러 투자, 이스라엘은 중동 내 미국 교두보 제공,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이란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세울 카드는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중 전선 강화는 한국이 가지고, 가져야만 하는 카드가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기회이자 시대정신이다. 간단히 말해 반중 전선 참여 여부가 트럼프 2.0 시대에 한국에 떨어진 핵심 과제다. 북핵 문제는 그 같은 대(大)전제하에서 거론될 변수(變數)로 변해 가고 있다. 자체 카드가 없는 한, 트럼프의 생각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가는 것이 한반도 생존의 기본이자 기초가 될 것이다. 만약 그 같은 길을 ‘굴종’으로 받아들이고 반대한다면, ‘주체의 나라, 반미의 나라’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쓰나미에 휩쓸려 가기 전에 대안(代案)을 만들어 협상해 나가는 것이 트럼프 2.0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안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트럼프의 경제 공세는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가자와 우크라이나 문제가 매듭지어지는 순간 트럼프발 ‘안보 쓰나미’가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