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회사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국회에 상법 개정안을 정부가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함께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대행은 “대내외 경제 여건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한번 모색해 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41번째 거부권 행사다.
한 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법안의 기본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해, 적극적 경영 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높다”고 했다. ‘모든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상적이어서, 이사들이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일부 주주들의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행은 “이는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韓대행 “美 상호 관세 충격 줄이는 정책들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정부의 대안은 100만곳이 넘는 모든 ‘회사‘가 아니라 2600여 ‘상장회사‘에만 적용되는 자본시장법에 일반 주주 보호 조항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한 대행은 “자본시장법 개정이 상장기업의 합병·분할 등 일반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이 큰 자본 거래에서 보다 실효성 있게 일반 주주를 보호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상장회사 중심으로 일반 주주 보호 관행이 정착되도록 하고,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가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한 대행은 이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함께 경제·안보 전략 TF 회의를 했다. 이 TF는 그동안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주재해 온 ‘대외 경제 현안 간담회‘를 확대한 것으로, 글로벌 통상 전쟁 대응책을 재계와 공동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한 대행은 “(미국의) 상호 관세가 발표되면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한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미국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아웃리치(정보 제공 활동)를 전개해 나가겠다”고 했다. 또 “이번 조치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자동차 산업 등 각 산업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 대행과 4대 그룹 총수들은 이날 비공개 회의 시간에 미국의 정책 동향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210억달러(약 31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정의선 회장과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이재용 회장, 지난 2월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고 온 최태원 회장도 관련 동향을 공유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총수들은 ‘지금부터가 협상의 시작인 만큼 정부가 대미 협상을 잘 준비해주면 좋겠다’ ‘기업들도 정부와 원 팀이 돼 함께 대응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면서 미국과 교역 관계가 있는 나라의 동향도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오갔다고 한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 2월 말 인도를 찾아 현지 사업을 점검한 바 있다. ‘대기업들은 여건이 상대적으로 낫지만, 특히 부품 업체들은 충격이 훨씬 클 수 있다‘며 ‘산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