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인 1월에도 피는 꽃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야생화동호회 모임 ‘야사모’에서 매년 제일 먼저 꽃소식을 올리는 사람은 제주도 산방(닉네임)님인 경우가 많다. 산방님은 새해 첫날 즈음 수선화 사진을 올려 회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제주 수선화는 1월에도, 이르면 12월부터 피는 꽃이다. 그래서 수선화는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헷갈리는 꽃이다.

제주 수선화. 빠르면 12월에도 피는 꽃이다.

제주 수선화는 엄연히 1월의 꽃이지만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전국적으로 1월에 볼 수 있는 꽃도 있다. 바로 납매와 풍년화다.

납매는 섣달을 뜻하는 한자 ‘랍(臘)’과 매화를 뜻하는 ‘매(梅)’가 합쳐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음력 12월, 양력으로는 1월쯤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몇 년 전 1월 중순쯤 납매를 보러 천리포수목원에 간 적이 있다. 납매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진하게 풍겨오는 향기를 따라가니 납매가 피어 있었다. 잎이 나오기 전, 빠르면 1월부터 향기를 내뿜으며 꽃을 피운다. 달콤하면서도 맑은 향기가 참 좋다. 중국이 원산지로, 관상용으로 공원·화단에 많은 심는 나무다.

납매. 이름 자체가 '섣달(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납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풍년화도 만날 수 있다. 노란색, 빨간색 등 다양한 품종의 풍년화를 심어놓았다. 꽃잎이 2㎝ 내외의 선형(線形)인데, 마치 종이를 오려놓은 것 같다. 일본이 원산지로, 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전국에서 공원수나 조경수로 심는다.

1월에 핀 풍년화.

납매와 풍년화는 전국 어느 수목원이든 그 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꽃소식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 홍릉수목원에 가면 풍년화 푯말에 ‘홍릉숲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나무꽃”이라고 써놓았다. 그러나 둘 다 자생종이 아니기 때문에 한해의 첫 꽃으로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길마가지나무도 빠르면 1월에 꽃이 피는 나무다. 어느 해 1월말 전주수목원에 갔더니 납매와 풍년화와 함께 길마가지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대개 2~4월에 잎겨드랑이에 1㎝ 정도의 꽃줄기에 흰색 또는 연한 홍색의 꽃이 2개씩 달리는데 일찍 핀 것이다. 꽃색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길마가지꽃에서도 역시 달콤한 향기가 난다. 길마가지나무 꽃은 좀 작은데다 개체수도 많지 않아 자주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다.

1월에 핀 길마가지나무꽃.

동백나무꽃은 1월에 한창인 꽃이다. 빠르면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피는 명실상부한 겨울꽃이다. 동백꽃은 벌어질듯 말듯 반 정도만 벌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꽃잎이 활짝 벌어져 있으면 일본 원산인 애기동백나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동백꽃.

동백나무가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꽃가루받이를 돕기 때문이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먹는 과정에서 이마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나른다. 동박새는 워낙 작고 날쌔 실물 보기가 참 힘든 새다. 동백꽃을 보러 갈 때마다 동박새를 담아보려고 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동백나무 사이에서 새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동박새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눈 속에서 핀 복수초.

눈을 녹이며 피는 꽃으로 유명한 복수초도 빠르면 1월에 노란 꽃을 볼 수 있다. 물론 복수초는 물론 납매·풍년화·길마가지꽃도 만개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2~3월쯤 피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지역에서는 1월에도 피는 것은 맞다. 1월에 피는 꽃이 워낙 드물다보니 조건에 따라 빨리 피는 꽃이라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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