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0%, 1.1%….

국내 톱 배우 이영애의 드라마 ‘구경이’, 고현정의 ‘너를 닮은 사람’, 전도연의 ‘인간 실격’(이상 JTBC)이 최근 방송에서 기록한 회당 최저 시청률(닐슨코리아·전국 가구 기준)이다. 각각 2.6%, 3.6%, 4.2%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떨어지며, 유명 여배우들의 ‘귀환’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전지현과 작가 김은희가 손잡은 ‘지리산’(tvN)도 어색한 CG(컴퓨터 그래픽)와 흐름을 끊는 배경음악 등으로 방송 초기부터 혹평에 휩싸였다. 1회 9.1%로 시작한 시청률은 최근 7.9%(8회)로 떨어지며 저공비행 모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들의 이름 세 글자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매회 방송이 거듭될 때마다 그들이 입은 옷, 그들이 먹은 음식, 이들이 방문해 촬영한 장소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한때 안방극장의 ‘퀸(Queen)’으로 불렸던 이들의 약발이 다한 것일까, 이들의 귀환이 먹히지 않는 이유를 살펴본다.

(왼쪽부터)'구경이' 이영애, '너를 닮은 사람' 고현정, '지리산' 전지현, '인간 실격' 전도연 /tvN(에이스토리)·JTBC

◇기다려주지 않는 시청자들

“몬스터 무시하고 핵심만 때려야 해. 점사(끊어 쏘기) 점사 점사.”

찌그러진 빈 맥주 캔과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쌓인 거대한 쓰레기장 같은 방. 여기서 한 여인이 씻지 않아 떡 진 머리로 은어를 써가며 컴퓨터 전투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여기서 이미 많은 시청자의 리모컨이 돌아간다. 화면 속 배우는 이영애, 대중이 원한 그의 모습이 과연 이것이었을까.

‘구경이’는 게임과 술이 전부인 보험조사관이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코믹 탐정극이다. 앞부분 고비만 넘기면 나쁘지 않다. 신예 작가 성초이의 각본도 탄탄하고, 만화식 전개도 신선하다. 드라마 ‘킹덤’에서 중전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김혜준은 구경이에서도 특유의 섬뜩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영애 역시 2회부터 ‘산소 같은’ 모습을 찾아간다. 잠깐 ‘친절한 금자씨’ 모습도 나온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겐 참고 기다릴 인내력이 없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구경이 자체는 꽤 잘 만든 드라마고, 이영애도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대중은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인간 실격’도 마찬가지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과 동명의 드라마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비슷한 분위기에서 길을 잃은 남자와 여자의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꾹 참고 본 사람들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잇는 인생작”이라고 한다. 전도연과 류준열은 그 감정선을 밀도 있게 표현하고, 허진호 감독의 연출도 섬세하다. 그러나 집에서 보기엔 극의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 정 평론가는 “요즘 대중은 즉각적 반응이 나오는 드라마, 카타르시스를 주는 드라마를 원한다”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6부작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16부작이 기본 구성인 지상파·케이블 드라마는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높아진 눈높이

시청자들의 높아진 안목도 이유 중 하나다. 고현정의 ‘너를 닮은 사람’은 정소현의 동명(同名) 단편소설이 원작.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만남으로 정작 자기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또 다른 여자의 치정과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복수 치정극이야말로 한국 드라마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린 소재가 아닌가. 고현정의 연기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김교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톱 배우들이 최전성기에 보여준 연기보다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시청자에게는 식상함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전지현의 ‘지리산’도 마찬가지다. 지리산은 2회 때까지 시청률 상승세를 보였으나, 이후 “어색하게 합성한 CG와 흐름을 끊는 간접광고(PPL) 등으로 극 몰입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드라마에 비하면 논란이 될 수준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지만, 이미 시청자들 눈은 블록버스터 영화급의 퀄리티에 익숙해졌다. 자체 최고 시청률 8%대인 송혜교 주연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SBS)는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겨우겨우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지만, 옛날만큼 화제성이 덜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시청자는 “과거 송혜교가 출연했던 다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유명 스타가 나온다고 성공한다는 법칙은 이미 사라졌다. 콘텐츠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유명 스타가 나오면 초반 스타 몰이는 되지만 시청자가 계속 드라마를 보게 하려면 대중성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는 연출과 작가 모든 부분이 받쳐줘야 한다”고 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엔 무명 배우라도 OTT의 자본과 탄탄한 각본, 노련한 연출로 한순간에 월드 스타가 되는 시대”라며 “원톱 배우가 시청률과 흥행을 결정해주던 시대는 이제 끝난 것 아닌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