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됐다. 새 정부는 한국을 외형과 내실을 모두 갖춘 진정한 선진국으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미·중 무역전쟁과 공급망 위기를 겪으며 첨단 과학기술이 글로벌 패권경쟁의 핵심이라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을 국정의 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구상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한국은 이미 과학기술을 통해 고도성장을 일군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새 정부는 이 경험을 살리되, 한층 발전한 과학기술 유전자를 우리나라에 심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경제발전 도구로서의 장점이 지나치게 부각돼왔다. 과학자들이 당장 경제적 가치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기초과학 역량과 도전 정신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남을 베끼는 추격자형 전략을 벗어나 선진국에 걸맞은 선도형 과학기술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불가피하다.
새 정부의 과학 정책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고민했으면 한다. 첫째, 과학기술은 거대 난제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우주탐사와 암 정복 같은 거대 난제는 당장 돈이 되고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스페이스X의 달·화성탐사, 글로벌 제약사들의 표적항암제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다. 지금 한국이 뛰어들지 않는다면 우주탐사와 국민의 질병 치료는 전적으로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 거대 난제 해결이 곧 한국의 미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핵융합 같은 에너지 개발이나 기후변화 극복 역시 과학기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둘째로 청년 과학자들이 창의적 연구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20~30대에 이전에 없던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물리학자 윌러드 보일이 50년 전에 개발한 소재는 수십년이 지난 뒤에 디지털 카메라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독일의 페터 그륀베르크가 1988년 발견한 거대자기저항은 오늘날 나노 기술과 반도체 저장장치 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돈이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당장의 취업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젊은 과학자들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준다면,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은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셋째, 실패를 인정하는 도전적 연구 문화 조성에도 힘써 달라. 한국의 연구 과제 성공률은 90%를 훌쩍 넘는다. 실패에 낙인을 찍다 보니, 모두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만 뛰어들기 때문이다. 성공이 보장된 연구가 혁신적일 리 없다. 미국 국방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성공과 상관없이 우리가 최초로 해본다’는 모토로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 자율주행차, 인간형 로봇, mRNA 백신이 탄생했다. 위험하지만 성공한다면 전 세계 유일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어떻게 발굴하고 키울지 고민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