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야생은 먹으려는 자의 몸부림과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발버둥의 연속입니다. 이 처절한 싸움에 무승부란 없습니다.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지요. 그 승부가 결정지어지는 순간이 한 컷에 들어왔을 때 야생의 구경꾼이자 방관자인 인간은 전율합니다. 이 잔혹한 야생에서 철저히 유리됐다는데 안도감을 느끼면서요. 오늘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포인트 리스 국립해안생태공원이 공개한 생생한 야생사진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둑중개를 사냥한 북미수달이 머리부분을 입에 물고 포효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Point Reyes National Seashore Facebook

피냄새가 비린내가 코를 찌를 듯 하지만, 사진 속성상 ‘먹방’이라고 하겠습니다. 승자가 된 북미수달(North American River Otter ·Lontra canadensis)이 노획물을 입에 문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습니다. 그 이빨에 단판승부의 패자가 되어버린 물고기 둑중개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쉬는 듯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둑중개를 입에 물고 있는 수달의 아래위턱에는 총 36개의 이빨이 나 있습니다. 이 가련한 둑중개의 운명은 정해져있습니다. 이 포효를 끝으로 수달의 이빨에 쓸리고 잘려나갈테니 둑중개의 온전한 모습은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진에 보이는 둑중개의 머리를 뺀 나머지 몸통은 이미 조각조각 찢겨 수달의 위장속으로 직행했을 공산이 큽니다. 수달은 큼지막한 물고기를 사냥하면 부분부분 찢어서 먹지, 통째로 삼키지는 않거든요. 어쩌면 이 수달은 어두일미(魚頭一味)를 몸소 만끽하기 위해 생선 대가리를 맨 끝에 남겨놓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국 인디애나주 무스카타투크 야생보호지역에서 수달이 민물고기 아미아를 사냥해 끌고 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Twitter

이 사진 한컷으로 우리는 이 길다란 몸뚱이의 짐승 내면에 깃든 괴수이자 괴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북미수달은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가 최장 1.5m로 우리나라 토종 수달과 비슷합니다. 한 때 멸종위기에 내몰렸다가 요사이 들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종족의 내력도 비슷해요. 이 수달이 촬영된 포인트 리스에서는 환경오염과 사냥 등으로 1960년 이후 수달이 자취를 감췄다가 1987년 세 마리가 모습을 나타낸 뒤 점차 숫자를 불려 지금은 지역의 최고 포식자로 등극했거든요. 그러나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는 우리나라 수달과 달리 북미수달의 메뉴는 훨씬 과감합니다. 바다와 바다와 연결된 하천 주변 다양한 지역에 터를 잡은 이들은 바닷물고기, 민물고기 뿐만 아니라 물새들까지도 종종 사냥합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들이 잡아먹는 새 중에는 가마우지와 사다새(펠리컨)까지 있다고 합니다. 가마우지와 사다새는 성체가 되면 수달의 몸집을 능가합니다. 이들 역시 왕성한 먹성으로 물고기들에게 공포의 포식자로 군림하는 사냥꾼들인데, 이들마저 수달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거지요.

디지털 사진 관련 매체인 DP리뷰에서 2016년 9월 '이주의 사진'으로 선정된 장면. 동남아시아에 사는 비단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머리부터 포식하고 있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DPReview

잘 알려진대로 수달은 족제비과(Mustelid)의 일원입니다. 족제비과는 고양이과(사자·호랑이·표범 등)나 개과(늑대·여우 등)보다 덩치나 파워면에서 한참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사실 맹수류 중에서 이들처럼 위기 없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파벌도 보기 힘들 겁니다. 족제비와 수달을 비롯해서 오소리·담비·스컹크·벌꿀오소리·울버린까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형과 기후대에서 완벽히 적응해서 살고 있거든요. 수달은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완벽한 적응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세아니아를 제외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에 모두 분포해있습니다. 족제비 무리 중에 이처럼 특정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골고루 분포하는 종류는 수달말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담비와 오소리(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 울버린(시베리아·북아메리카), 벌꿀오소리(아프리카·아라비아) 등의 서식지 분포와 확연히 대비되죠. 가장 작은 수달은 동남아시아에 사는 애기발톱수달이고, 제일 큰 수달은 울버린과 함께 족제비과의 양대 괴수로 추앙받아 마땅한 남미의 왕수달입니다.

세계 최대의 수달인 남미의 왕수달이 사냥한 물고기를 포식하면서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해오라기를 노려보고 있다. 생선 먹다가 닭고기에 군침흘리는 듯한 눈빛이다. /Tambako The Jaguar Flickr

수달의 몸은 그 자체로 완벽한 수중병기입니다. 길다란 몸뚱아리는 물속에서 움직일 때 완벽한 유선형을 이룹니다. 그 매끄러운 몸매를 덮고 있는 것은 완벽한 방수기능을 갖춘 빽빽한 털이죠. 이 몸으로 몸을 S자형태로 움직이면서 물속을 헤엄치고, 꼬리로 몰을 치면서 몸을 자유자재로 회전시키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래처럼 물속에서 수면으로 솟구치기도 하는데요. 물에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주변 상황을 살피기 적합하도록 눈과 코는 위쪽에 붙어있습니다. 네 발에는 ‘당연히’ 물갈퀴가 달려있고요. 이렇게 수중 사냥에 완벽한 몸을 갖고 있으니 그 어떤 물고기가 배겨내겠습니까.

족제비과 짐승들은 강렬한 살육 본능으로도 악명높습니다. 굳이 먹을것도 아니면서 일단 죽이고 보는 살육본능에 의해 애꿏은 가축들이 죽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수달의 경우 그런 악명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렇지만 대개 물속에서 퍼덕이는 물고기를 끌어낸 뒤 일단 날카로운 이빨로 파먹기 시작하는 수달의 식사법은 다른 덩치 큰 맹수들의 식사 못지 않게 적나라하고 잔혹한 광경을 만들어냅니다. 방금까지 기능했던 신체 부위가 툭툭 떨어져나오는가 하면, 먹고 남은 나머지 몸뚱아리가 그대로 풀섶이나 돌위에 남겨져있기도 하죠. 물론 이런 남은 부위도 결국 작은 스케빈저들이 달려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요.

/늪지의 사냥꾼 악어거북을 공략하는 수달이 거북을 뒤집은 뒤 연약한 배를 파고들고 있다. 이 공격이 성공하면서 거북은 수달의 밥이 되고 말았다. /malawimom Youtube

물고기로 성이 차지 않는 일부 덩치 큰 수달은, 앞서 언급했듯 물새들을 덮치기도 하고, 바로 뒤에 보여드릴 동영상처럼, 늪지의 사냥꾼으로 악명높은 악어거북까지 덮칩니다. 악어거북의 약점이 연약한 배 부위를 간파하고, 잔혹할 정도로 집요하게 공략한 끝에 산채로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삶의 치열한 의지 이상의 섬뜩함이 느껴지는 장면(malawimom youtube) 잠깐 보실까요?

우리나라에 사는 수달은 전세계 수달 중에서 가장 서식분포가 넓은 유라시아수달입니다. 한국에서 수달은 멸종위기를 딛고 가장 빠르게 번성하고 있는 짐승으로 주목받고 있죠. 10여년전만 해도 아주 일부 청정지역에만 사는 희귀종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대도시를 흐르는 하천에도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더 이상 화제가 아닐 정도로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양어장이나 비단잉어를 키우는 연못에 침입해 물고기들을 초토화시켰다는 소식도 간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달의 출현횟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하천의 수질이 전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죠. 왜가리와 해오라기가 고층건물이 즐비한 광화문 마천루 인근에 터를 잡고 사냥을 하는 게 친숙한 일상이 됐습니다. 어쩌면 한강에서 중랑천을 따라 다시 청계천으로 올라와서 제 몸뚱아리만한 잉어를 사냥하고 게걸스럽게 탐식하는 수달의 모습을 서울 복판에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