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퍼드물범이 펭귄을 사냥한 뒤 사체를 물어뜯고 있다. /Picture of the Year International. Paul Nicklen. National Ge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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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善意)’라는 말에는 냉정하고 잔혹한 측면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의도와는 다른 끔찍하고 잔혹한 결말이 초래됐을때, 방어막을 치기 위해 동원되곤 하는 말이거든요. 윤리와 지성으로 무장한 인간세계에 ‘선의’는 비틀어지고 헝클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재설정하는데 유용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야생의 짐승세상은 달라요. 아무리 선의로 벌인 일이라도 그로 인해 뜻밖의 파국을 불러왔어도 주워담기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야생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되는 까닭입니다. 오늘은 순수한 선의가 평화롭게 굴러가던 해양 생태계에 어떤 충격파를 몰고 올 수 있을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짧은 영상으로 시작합니다. 어지간한 거대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보다 스마트폰에 조악하게 포착된 저화질 동영상이 섬뜩한 현실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갈매기를 물어죽이는 바다표범./ 인스타그램

‘mrmrsnavarrete’이라는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올린 동영상이 최근 북미지역 아웃도어·수렵전문지 ‘필드 앤 스트림(Field and Straem)’에 소개됐어요. 사건은 눈깜짝할사이에 벌어졌어요. 갈매기가 끼룩끼룩 노닐고 물범이 고즈넉하게 헤엄치는 올리브빛 바다. 한 관광객이 과자나 샌드위치 조각 정도로 보이는 걸 툭 던집니다. 물범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곧잘 던져준다는 걸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을 거예요. 능숙한 헤엄으로 먹을 거리를 향해 돌진하던 물범, 그러나 고작 손가락 한 뼘 정도의 길이만큼, 그만큼의 찰나의 순간만큼 재빨리 움직인 건 갈매기였어요. 물범의 코앞에서 빛의 속도로 내려앉아 먹을 것을 나꿔채갑니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갈매기는 물범보다 간발의 차이로 앞서 먹을 것을 가로챌만큼 날랬지만, 물범의 이빨까지 충분히 피할만큼 재빠르지는 못했어요. 고즈넉한 풍경이 돌변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먹을 것을 채간 갈매기의 목덜미를 문 물범이 분노와 광란의 헤드뱅잉을 시작합니다. 이 순간 어울리는 음악은 귀청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광기의 사운드로 가득찬 데스 메탈이지 싶어요. 사탄이 작사하고 악마가 작곡한 데스 메탈 말이죠. 광기어린 헤드뱅잉의 원심력으로 인해 날카로운 물범의 이빨에 고정돼있던 갈매기 목덜미의 근육과 살점이 분해되고 조각납니다. 이 장면의 섬뜩함을 배가시켜주는 것은,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비명입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살육의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공포와 함께, 어쩌면 자신이 선의로 던진 행위가 불러온 끔찍한 현장을 지켜보는 개탄과 후회의 비명일 수도 있습니다.

갈매기가 사냥한 토끼를 통째로 삼키고 있다. /India Times

그러나 한번 던진 주사위와 동전과 먹잇감은 다시 주울 수 없습니다. 물범의 이빨 공격에 몸통에서 떨어져나간 갈매기의 머리를 다시 붙여서 되살릴 수 없는 것처럼요. 프리즈비처럼 거칠게 회전하다 수면과 충돌해 처연하게 둥둥 떠다니고 있는 갈매기 사체에서 선홍색 피가 주루룩 흘러나오는 것으로 살육극은 막을 내립니다. 여러 정황상 물범이 갈매기 몸뚱이를 먹어치웠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 분노의 살육이 애먼 갈매기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만 마무리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갈매기 몸뚱이에서 흘러나온 피는 바다를 부유하던 미생물과 치어와 갑각류·연체동물의 유생들에게 따끈한 영양분이 됐을 겁니다. 불과 몇분전까지 끼룩 끼룩 소리를 내며 곡예비행을 선보이던 몸체는 부리·갈퀴·깃털·뼈 등으로 차곡차곡 분해돼 바다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의 일용한 양식이 됐겠죠. 처연하게 치켜뜨고 있을 눈까지도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족관의 귀염둥이로만 알던 물범의 잔혹한 살육자의 면모를 목격한만큼, 앞으로는 더욱 조심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먹성과 공격성으로 ‘깡패새’ 이미지로만 각인돼있는 갈매기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갈매기가 비둘기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KingstonGardensandHydeParkBirds

물범에 대해서는 일전에 소개해드린 바 있으니 오늘은 가엾은 희생자 갈매기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갈매기는 비둘기·까마귀와 함께 ‘생존력 3대 천왕’으로 불릴만한 새입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환경오염으로 많은 짐승들이 서식지를 옮기거나 사라지는 동안에도, 오히려 훌륭하게 적응하고 터잡는 강인한 진화력을 보여왔죠. 갈매기는 분류학적으로 물떼새류(공식 명칭은 도요목)에 속합니다. 기다란 다리와 사뿐사뿐한 걸음걸이가 특징인 도요, 깜찍하고 앙증맞은 몸집을 가진 물떼세, 몸에 비해 엄청나게 커다란 발가락을 가진 자카나, 종종 펭귄과 혼동되지만 염연히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를 가진 바다오리 등이 여기 속해있는데요. 먹성이나 공격성, 생존력 등 어떤 측면으로 보더라도 갈매기가 물떼새류의 킹왕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발견된 종만 90종에 육박하는데요. 오대양 육대주 뿐 아니라 남극과 북극까지 생활의 터전으로 삼을 정도입니다. ‘~갈매기’라는 이름이 붙는 새들은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그냥 갈매기’입니다. 항구에서 끼룩거리며 날아가면서 생선뼈나 음식 찌꺼기까지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바로 그놈들이예요. 먹성이 어찌나 대단한지 이들의 메뉴판에는 토실토실한 토끼와 비둘기, 심지어 같은 물떼새류인 바다오리까지 포함돼있죠. 순식간에 목구멍속으로 집어삼키는 장면(Caters Clips Youtube), 육촌뻘인 바다오리 ‘퍼핀’을 무참하게 사냥하는 장면(Blue bird’s in blue World Youtube)을 일단 보실까요?

그다음 갈매기들은 제비갈매기들입니다. 갈매기처럼 먹성이 극악무도할 정도로 우악스럽지 않고, 몸길이도 훨씬 아담합니다. 부리는 갈매기보다 뾰족하고, 이름이 말해주듯이 꼬리는 대체로 두 갈래, 혹은 다른 모양새로 갈라져있어요. 이들이 유명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동능력과 비행거리입니다. 주로 북극을 포함한 북반구 북쪽에 터를 잡으며 살아가면서도 이동할때는 남극까지 가기도 하거든요. 말 그대로 극과 극을 오가는 셈이죠.

갈매기가 같은 물떼새류인 바다오리인 퍼핀을 잡아먹으려고 공격하고 있다. /Will Nicholls X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놈들은, 갈매기 중의 갈매기 도둑갈매기입니다. 갈매기의 드세고 거친 성미가 완전히 뭉뚱그려진 ‘슈퍼갈매기’입니다. 부리만 봐도 여느 갈매기보다 날카롭고 각이 진 것이 맹금류의 그것과 빼닮았습니다. 식성도 천성 사냥꾼이예요. ‘도둑갈매기’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다른 물새들이 사냥한 것을 끈질기게 쫓아가서 날개를 잡아당기거나 몸을 부딪치면서 끈질기게 괴롭힌 뒤 입에서 떨어지는 먹잇감을 나꿔채는 테크닉이 압권입니다. 이놈들은 ‘둥지파괴범’이기도 하죠. 펭귄이나 부비새 등 상대적으로 성질이 온순한 물새들이 무리지어 사는 곳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어갑니다. 그리고 부모새가 훤히 보는 앞에서 솜털이 보들보들한 새끼를 채갑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연약한 살갗을 갈고리진 부리로 파헤치며 허겁지겁 먹어치웁니다. 삼키기 적당한 크기의 새끼 새라면 여느 갈매기들과 마찬가지로 단숨에 삼켜버립니다. 더러는 제 새끼를 먹이기 위해 게워주기도 해요. 펭귄 서식지를 파고들어 새끼를 품고 있던 펭귄을 집요하게 공격한 뒤 결국 고이 기르고 있던 새끼 두 마리를 눈앞에서 먹어치우는 도둑갈매기의 비정한 사냥·포식 장면(UCLA JT Youtube) 한 번 보실까요?

부모의 본능으로 무장한 어미·아비새의 따뜻한 품도 새끼 펭귄들을 도둑갈매기의 습격으로부터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도둑갈매기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역시 하루하루 살아남는게 승자인 세상에서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 위치일텐데요. 그렇게 먹고 먹히며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혈투라는 동력에 힘입어 생태계라는 바퀴는 오늘도 우직하게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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